얼마 전 지난 몇 년 새 급격히 변모, 발전하고 있는 동남아 몇 나라를 돌아 볼 기회가 있었다. 모두 여러 번 가 본 나라들이지만, 갈 때마다 항상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지난번 출장 때, 너무나 가슴 뛰는 일이 있어 호텔 잡지에 난 광고를 보고 심장에 3차원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는 내게 서울이 아닌 동남아국가의 한 병원에서 이런 사진을 찍었다는 기억과 우리가 지었다는 쌍둥이 빌딩이 인상에 남는 도시이다. 서울을 방불케 하는 고층빌딩과 출퇴근 교통난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잠시 잊게 하지만, 오후에 대지를 식혀주는 장대 소나기가 내가 먼 이국에 와 있다는 것을 깨우치곤 하였다.
이 나라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있으면서도 이를 서로 포용하고 어우르면서 사회화합을 꾀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포용성을 바탕으로 수도인 쿠알라룸푸르가 주변의 싱가포르가 주는 단순성을 넘는 다양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점차 동남아의 허브도시로 성장하고 있다고 하는 주장이 실감났다. 이들이 전력을 기울이며 키우는 성장산업의 핵심이 자동차산업과 정보통신부문이었다. 말레이시아 국영 자동차회사는 국책사업으로 기존 공장 이외 새로운 신규 자동차공장을 증설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만나본 공장장의 말속에는 동남아국가중에서는 유일하게 자국에서 차를 생산하고 수출한다는 자부심과 신규공장 증설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주 깊이 담겨져 있었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인 우리나라 자동차부문이 노사의 갈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사이, 이 나라는 아직은 우리의 경쟁상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금씩 성장하면서, 해외수출시장에서 경쟁하는 나라로 커갈 것이다. 그 속에 우리나라 한 기업이 자동차 생산계획에 따라, 차체공장, 도장공장, 및 조립공장을 통합제어하고, 생산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함으로써 효율적인 자동차 생산을 지원하는 자동차 생산추진체계 프로젝트를 맡아 고객사의 신차 개발을 자문해 주는 정보통신부문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어서 공장 완성을 위한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과 협력의 현장을 보는 듯했다.

정보통신부문에서의 그들의 노력은 그들이 ‘미래로 가는 관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조성, 운영하고 있는 멀티미디어 첨단 정보단지인 Multimedia Super Corridor와 그의 주요 허브도시인 사이버자야(cyberjaya)에서 엿볼 수 있다. 그 성공여부에 대해 말레이시아 자체에서도 회의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레이시아는 이를 통해서, 해외의 유수기업들을 유치, 새로운 상품개발과 연구를 장려하고, 수출기반 산업으로 육성하려 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 단지를 방문한 날도 에릭슨(Ericsson)이 동남아 지역본부를 이 단지 내에 개관하는 날이라고, 마하티르 수상이 직접 참석하는 기념식이 열렸었다. 이들은 해외기업들에게 각종 시설과 혜택을 부여하고, 아시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하여, 2003년까지 애초 계획했던 500개를 넘어 지금까지 800여개의 국내외 회사들이 이미 입주하였는데 “이것이 성공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마하티르 수상은 깊은 자신감을 보였다. 이 계획은 정부가 비전을 제시했지만, 민간기업들에 의해 관리되고 추진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국가 지도력의 역동성과 통찰력의 산물로 볼 수 있는 관민 공동, 국가적 전략이었다. 이 단지 내에서는 전자정부, 스마트카드, 첨단 교육기관, 원격진료사업, e-비즈니스 등의 대표적 응용분야 연구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협동을 촉진하고, 혁신적인 응용프로그램과 상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은 입주업체들을 위한 정책지원, 안정적 기반조성, 진보적 인적자원 개발, 정부와 기업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이 단지가 성공하려는 이상적인 투자환경을 제공하려 하고 있었고 말레이시아정부는 이 ‘가상도시’를 정보시대 산업의 허브로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또한 이 단지 바로 옆에서는 새로운 행정 지능신도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첨단 정보단지와 신행정 단지가 별도의 계획이 아니라 서로 어우러져 가면서 함께 건설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비전과 지도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이런 것으로 유명했던 것 같았는데(?) 우리가 세계 제일의 초고속정보통신대국으로 성장, 자랑하고 있는 사이, 다른 나라들도 꾸준히 기반부터 다지면서 추격해 오는 모습 같았다. 우리도 동북아 경제중심전략에 근거한 허브구축에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청사진과 추진방안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실질적이고도 효과적인 유치방안과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도 조만간 신 행정수도 건설 논의가 시작될 텐데, 지역감정의 흥정물이나, 정쟁의 대상이 아닌, 후세 수백년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비전이 담긴 계획과 이를 과감히 추진하는 지도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
이 첨단정보단지 속에 있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건너간 나라가 베트남이었다. 수많은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달리는 하노이거리에서 지난번 여행에는 하루도 보지 못했던 해를 이번에는 매일 볼 수 있었던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다. 이것이 변하는 베트남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우리 연구소와 같은 우정정보전략연구소(NIPTS)가 세계개발기구(UNDP)와 함께 자국 정보통신산업 발전전략 수립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경험과 전략을 전수받고자 우리 방문 시, 전 직원이 참석한 워크숍을 열면서 경청하였다. 장관까지 오찬을 내면서 자국 연구소의 정보통신 및 우정전략 수립을 열심히 도와주기를 요청하는 진지한 모습속에서 그들도 새로운 비전을 정립하고 이를 추진함으로써, 동남아에서 무서운 강국으로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트남은 지금까지 GSM 계열의 2개 회사가 2백만명의 가입자에게 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지난 7월부터 CDMA기술을 이용하는 신규회사가 등장, 3파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신규회사는 우수한 통화품질과 첨단 부가서비스, 그리고 새로운 요금체계로, 베트남 보통사람들이 일생동안 모아도 살 수 없다는 고가의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걸고, 금년 말까지 12만5천명의 가입자를 목표로 뛰고 있었다. 인구 8천만에, 유무선 전화보급률이 6.9%이고 그 중 휴대전화 보급률은 2.2%에 불과한 현실을 보면 베트남은 분명 매력적이고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가졌다 할 수 있었다. 특기할 것은 그들의 영업전략속에 우리나라에서 회자되는 ‘통신3강’의 유효경쟁논리를 앞세우면서 후발사업자라는 상황을 헤쳐 나가려는 모습이었다. 경쟁과 생존을 위한 논리는 나라만 바뀔 뿐,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두 나라를 다녀오면서, 이들이 아직은 우리보다 뒤져있지만, 두 나라에서 자신감, 그리고 역동성과 성장잠재력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 통찰력과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와, 자신감을 갖고 이를 신념으로 믿으면서 이행하려는 국민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한다. 열심히 살아 온 토끼가 낮잠 자거나 허세를 부리는 사이에 거북이가 부지런히 달려오고 있다고 할까? 여기까지 온 우리의 노력과 각고를 한갓 옛 얘기로만 치부하고, 자족하려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 투영되면서 몸이 흠뻑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열치열이라고, 더운 여름날, 그 더위를 멋지게(?) 극복하는 길은 어쩌면 우리보다 성장열기로 더 뜨거운 곳에 가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업무출장이 아닌 휴가여행이라면 훨씬 더 좋겠지만...
--*약력*-------------------------------------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학사 전공 : (경제학)
+ 미국 Vanderbilt University 박사 전공 : (경제학)
+ 2000.08 ~ 2002.01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APII협력센터 소장
+ 2003.06 ~ 현 재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국제연구협력단장
+ 2003.03 ~ 현 재 : APEC TEL WG(전기통신전체회의) Vice Chair
+ 2002.03 ~ 현 재 : APEC TEL 인력자원개발분과 Conven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