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표현이 대변하듯이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물리적 거리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장애요인의 목록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1858년에 제임스 뷰캐넌 미국 대통령과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대서양 횡단 해저케이블을 통해 인사를 나눈 이래로 정보통신 기술은 거리의 극복을 바라는 인간의 염원에 부응해왔다. 지구촌 저편의 소식을 동시간으로 듣고 보거나, 비행기로 열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과도 이웃집과 같이 선명하게 통화하는 것이 당연시 된지도 오래이다.
한편 최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영역의 붕괴’를 가져왔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에서 정보통신 기술의 비중이 늘어감은 물론이고, 금융산업의 정보통신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영역의 붕괴는 아니고 영역간의 결합이기 때문에 각 산업 고유의 특성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보편화는 통신과 방송이라는 영역간의 경계를 급속하게 허물고 있다. 디지털화로 인해 모든 정보가 0과 1의 조합으로 처리되면서 통신 네트워크나 방송 네트워크를 통한 컨텐츠의 구분이 무의미해져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의되는 통신과 방송간의 영역붕괴를 일반적으로는 ‘통신·방송 융합’이라고 하고, 정보통신 분야의 핵심적인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 ‘디지털 융합(digital convergence)’이라고도 부른다.
통신·방송 융합은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서비스의 출현으로 다가오고 있다. 일방향이던 방송이 데이터방송과 같이 양방향화되어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증권정보를 볼 수도 있고, 텔레비전 수상기로만 볼 수 있던 방송 프로그램을 휴대폰으로도 시청할 수가 있다. 통신이란 그저 전화통화라고 생각하던 것이 그리 먼 예전 같지가 않은데, 요즘의 통신이란 문자 메시지이고, 신세대들에게는 카메라 폰으로 찍은 자기 사진을 남친, 여친에게 전송하는 것이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PC로 보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영역의 붕괴’는 다양성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고, 선택권 및 편의성 증가 등을 통해 이용자들이 궁극적인 수혜자가 될 것이다.
‘거리의 붕괴’ 시대에는 통신과 방송 분야의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산업발전을 도모하고 국민수준의 향상을 기할 수 있었기에 관련 정부부처들이 적극적으로 지원책을 모색했고, 무엇보다도 개별 산업 나름대로의 경계가 분명했기 때문에 업계의 이해충돌은 없었다. 방송의 발전이 신문의 광고시장을 잠식하는 면이 있기는 했지만, 미디어 시장의 확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했기에 갈등이 부각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거리의 붕괴’에 수반되었던 국가적, 사회적 움직임은 ‘발전연대(the era of development)’의 이념과 잘 부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역의 붕괴’에서는 관련 당사자들 간의 이해대립이 첨예하다. 관련 부처들은 흐릿해지는 경계선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긋기에 바쁘고, 업계에서는 담장 너머에 있는 떡은 먹고 싶지만 내 떡에 침 흘리는 놈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론 서로 주고받자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진의를 따져보면 조금 주고 많이 받자이니 싸움이 없을 수가 없고 양보도 어렵다.
각종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융합을 뒷받침하기에 필요한 기술은 향후 5년 정도면 완성단계에 들어서고 10년 이내에 상용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통신·방송의 융합이 완성되기에는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기술적 요인이나 시장 요인 보다는 상이한 정책 목표 및 규제전통, 기존 산업계와 기득권층의 반발 등이 장애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장애요인을 좀 더 좁혀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통신·방송 융합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법령의 미비와 함께 주무기관의 분리에서 연유되는 점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관련 기관의 즉각적인 통합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타당성 있는 견해이며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거리의 붕괴’가 일어나면서 요구되었던 국가적, 사회적 노력이 있었듯이 ‘영역의 붕괴’로 인해 정리되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한 번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통신과 방송의 중요한 차이점을 몇 가지 지적해보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으로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는 통신과 공익적 측면을 강조하는 방송은 정책목적에서부터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통신은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다. 따라서 효율성과 시장원리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게 된다. 반면에 방송은 양질의 컨텐츠를 공중에서 제공하는 것이 그 목적이 되기 때문에 희소한 전파를 다수의 복리증진을 위해서 사용하는 규범적, 공익적 측면을 강조한다. 목적의 차이는 규제의 방향과 방식에서도 차이를 낳았다. 통신의 경우 경쟁의 활성화와 소비자 편익의 증진 등에 중점을 두는 반면, 방송의 경우는 공익성 확보를 위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진입규제, 다양한 편성·운영규제 및 내용규제 등에 중점을 둔다. 한편, 경쟁 활성화를 중시하는 통신정책은 사업자의 상업적 이윤 추구를 정책의 기본 원리로 삼고 있다. 사업자의 이윤추구 행위가 산업의 효율성 증대와 연관되면서 정책적으로 장려되는 기조를 가지지만, 공익성을 중시하는 방송정책은 경제적 이윤추구보다 도덕적 가치 추구를 중시하고 있다. 여기서 내용의 도덕성 확립은 사업자의 상업적 이윤추구와 상충되므로, 도덕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방송사업자의 이윤추구행위를 유발하는 시장적 요소를 차단하려는 규제를 선호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요약하면, 통신과 방송은 이념적으로 산업성과 공익성의 양 극단에 서 있다가 이제 시장에서의 요구와 기술의 발전으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통신·방송 융합은 ‘산업성과 공익성의 조화’라는 매우 어려운 숙제를 던지고 있다. 일견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많은 외국에 비해서 현재 우리나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요구되는 도덕성은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상당히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표현할 수 있는 남여간의 애정표현은 아직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케이블TV나 위성방송과 같은 다채널 매체에 성인물이 넘쳐나고 있으며, 연예인들의 누드집이 통신을 통해서 단시간내에 전국적으로 전달되는 현실에서 방송의 규범적인 역할을 고수하겠다는 것은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다. 또 미약하기는 하지만 방송도 매체간 경쟁이 어느 정도는 도입되어 있다.
앞서 통신·방송 융합은 필연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다양성 증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양성의 증가가 통신이나 방송에 대한 특정 세력들 간의 다툼이나 전횡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해야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우선은 현재보다 방송에 대한 도덕성 확보 의무를 현저히 감소시키고 시장경제 기능을 대폭 허용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기관통합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볼 때, 하나의 기관이 무리 없이 두 분야의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두 분야간의 정책목표 차이를 축소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대하여 실질적 측면과 제도적 측면에서 안정적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방송규제 기구의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시되고,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 상황에서 기구의 즉각적인 통합은 통신부문이 시장원리보다는 정치논리에 의해 더욱 크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통신·방송 융합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필요한 노력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방송의 역할과 운영원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수많은 정책실패가 사전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임은 사람들이 대충대충 하다가 실수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일은 이미 진행되고 있으므로 걸음을 재촉해야 할 것이다.
--* 약력 *----------------------
+ 연세대 신문방송학 학사
+ 연세대 신문방송학 석사
+ University of Washington 언론학 박사과정수료
+ Ohio State Univ. 언론학 박사
+ 통신방송연구실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