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는 IMF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1,000만이라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대변하는 IT강국으로서의 이미지이다. 한-일 월드컵과 대통령 선거를 치루면서 한국과 IT, 한국과 인터넷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되었다. 수많은 나라의 관련 전문가들이 봇물처럼 한국을 방문하였다. 정보통신부와 정보화 관련기관, 통신사업자와 PC방 등을 돌아보며, 놀라워했고 또 신기해했다. 국가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이들은 대체로 급격한 초고속인터넷의 확장배경, 정부의 역할과 정책수단, 정보화추진체계 등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이들이 끝내 미심쩍어 하면서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질문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인터넷으로 무슨 일을 해요?” 특히, 우리를 벤치마킹하려는 목적에서 방문한 개도국과는 달리 유럽 등 선진국에서 찾아 온 방문자들은 사뭇 공격적이기도 하다. 때론, 인터넷 접근환경이 좋아졌다고 해서 한국의 경제나 사회에 특별한 발전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듯한 시각도 엿보인다.
우리의 정보화에 대한 비판적인 단면은 정보화에 대한 국제적 비교에서도 나타난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세계 1위, 인구비례 인터넷 이용자수 세계 2위, 정보통신에 대한 가계지출 2위인 우리의 위상은 유엔이나 WEF(세계경제포럼) 등에서 평가한 정보화 종합지표에서는 각각 세계 21위, 세계 14위로 급격히 떨어진다. 그렇다면, 한국의 종합지표 평균을 절감시키는 요소는 무엇일까? WEF의 정보화 종합지표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한 핀란드와 미국에 비해 한국이 특별히 낮은 평가를 받은 항목은 입법기관의 효율성, 인구 천 명당 안전한 서버의 수, IT교육프로그램의 질, 인터넷 행정거래서비스 등이다. 또한 정부부패도, 시민사회 성숙도 등 정보사회와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지표들이 정보화 지표의 세부항목으로 채택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이러한 것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국제사회는 IT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에게 어떠한 현상과 변화를 기대하는 것일까?
핀란드는 1998년을 기점으로 그 전까지의 기술, 산업중심적 정보화 정책을 반성하고, 인권, 시민사회의 활성화, 개인정보 보호 등 삶의 질에 주안점을 두는 인간 중심의 지속가능한 정보사회(a humane and sustainable information society)를 추구할 것을 선언하였다. 핀란드의 정보화수준이 당시에도 이미 세계 선두권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획기적인 대응은 매우 참신해 보인다. 핀란드는 정보서비스의 개발은 다양한 삶의 터전에 사는 시민들의 수요와 경험을 고려해서 추진하여야 하며, 정부의 역할도 정보화의 방향성에 대한 기초연구와 법제도 정비, 교육 등 정보사회의 환경 조성으로 국한시킬 것을 분명히 하였다. 정보사회는 탈집중화된 방식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조정과 통제가 필요로 하는 부분도 있지만 중앙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조정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이다.

정보통신 인프라의 세계적 수준에도 불구하고 정보화의 실질적 성과 측면에서는 자신 있게 답변을 내리지 못하는 우리는 이제 다시 한번 정보화의 의미와 방향 그리고 정부의 정책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정보화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정보화를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인지, 그리고 정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따져봐야 한다. 전자상거래의 도입으로 국민의 경제생활이 얼마나 합리적이 되고, 전통적인 도시계층의 제약 하에 있었던 소비생활이 얼마만큼 자유로워 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가격비교나 옥션 등이 기존의 불합리한 유통체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나아가 기업의 경쟁력 구도에도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지 분석해야 한다. 전자정부 사업으로 인해 국민이 인식하는 행정관청의 문턱이 얼마나 낮아졌는지, 행정관료의 경직성과 불필요한 규제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그리고 행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인터넷이 갖는 의미와 효용, 사이버문화와 청소년들의 가치변화, 시민사회의 성숙과 사회적 의사소통 채널로서의 인터넷 등에 대해서도 보다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
상기한 이슈 하나 하나에 대해 성찰의 자세로 연구하고 대안을 모색할 때, 우리는 비로소 “너희가 진정 IT강국이야?”라는 냉소적 질문에 떳떳하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단계를 힘들여 거치지 않고 또 다시 기술적인 출구를 찾아 탈출해 나간다면, 우리는 또 한번의 찬사를 받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무늬만 IT강국”이라는 오명을 받게될 우려가 높다. 지금은 무작정 새로운 비전과 미래를 찾아갈 시점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세계가 부러워하는 미래에 와 있다. 이제는 차분히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고 값비싼 교훈을 찾아낼 때다. 세계가 우리에게 거는 기대는 바로 그러한 선험자의 고뇌와 지혜일 것이다. 미래 정보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 역시 바로 이러한 반성에서 피어날 것이다
----------* 약력*----------------------------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지리학과 문학사 / 전공 : (경제지리학)
+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학과 문학석사 / 전공 : (경제지리학)
+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학과 박사학위 / 전공 : (경제지리학)
+ 2003.01 ~ 현 재 : 대한지리학회 이사
+ 2003.01 ~ 현 재 : 한국지역학회 편집위원
+ 2002.10 ~ 현 재 : 한국 LBS(위치기반서비스)산업협의회 제도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