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학이 고생물학보다 더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본다면 그것은 아마도 현실에서의 정책적 함의를 이끌어내는 가능성에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대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애오라지 전념하거나 혹은 공상과학소설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책 제언을 통해 실제 역사의 진행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많은 경제학자들은 만족감을 느낀다. Stigler의 표현을 빌자면 경제학자들은 “설교하기(preaching)”를 좋아하는 것이다. 정책적 함의를 결여한 이론 모형이란 마치 목적지가 없는 여행이거나 또는 점수가 없는 탁구 게임과 같이 맥빠진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규범경제학은 정부가 가진 정책 수단의 후생 효과에 대한 분석에 기반하여 정부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활발한 정책 조언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이때 정부는 보통 외생적이며(exogenous) 호의적인(benevolent) 존재로 취급된다. 다시 말해서 정부의 역할은 경제학자가 사회후생 극대화를 위하여 최적의 것으로 제안하는 정책을 채택하여 따르는 것으로 가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puppet government" 견해가 현실을 만족스럽게 설명하고 있지 못하는 사례들은 생활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뉴욕 허드슨 강을 건너는 데 대한 혼잡통행료 징수가 뉴욕 도심 인구의 후생을 크게 증가시킬 것임이 최소한 1959년 이래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주지의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은 왜 실현되지 못했는가? (O'Flaherty and Bhagwati, 1997)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광고 판매를 독점적으로 대행하고 있는 KOBACO 체제의 모순점과 비효율성에 대해 끊임없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은 항상 추진 도중에 슬그머니 사라지곤 하는가? 다시 한번 Stigler를 인용하자면, 그는 보호 관세 정책, 고리대금법 등이 경제학자들로부터의 무수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것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목표들이 이러한 정책들에 의하여 상당히 효율적으로 수행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관세는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집단에 수익을 재분배한다... 우리는 잘못된 정책들로 가득찬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러한 정책들은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정책이 아닌 것이다.”
최근 political economy 연구의 발전은 정부 부문의 행태를 모형 안에 내생화하여 정치적 과정과 동인이 경제 정책의 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를 보다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정부 역시 다른 경제 주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유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게임에 참여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정부의 목적함수는 얼마든지 사회후생함수와 상이할 수 있다.또한 정부의 행위는 다른 게임 참여자들의 행동, 예컨대 특정 집단의 로비 활동 등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정부 및 정부 정책의 내생화(endogenization)는 경제 모형의 명시적인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론의 발전에 따라 우리는 정부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에 대하여 보다 풍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미묘한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정치경제 모형 안에서 “내생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규범경제학자들의 정책 조언이란 애당초 과연 가능한 활동일 수 있겠는가? Bhagwati, Srinivasan 등은 이러한 문제를 "Determinacy Paradox"라고 명명하고 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선택할지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갖는 참여자로서의 균형 행동의 결과라면, 정부에게 관세를 낮추라고 조언하는 것은 마치 독점적 사업자에게 가격을 낮추라고 충고하거나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추워질 날씨에 대비하여 오버코트를 입으라고 충고하는 것과 매한가지로 의미 없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determinacy paradox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카스 비판(Lucas critique)과는 사뭇 다르다. 루카스 비판은 만약 정부가 경제학자들로부터 특정 종류의 조언을 받아들일 경우 민간 경제주체의 합리적인 기대에 의하여 그러한 조언이 “잘못된” 것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반면, determinacy paradox는 정부가 어쨌든 자신이 할 일을 할 것이므로 조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Determinacy paradox는 전통적인 경제학의 역할로서의 ”정부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조언하기(advising governments what should be done)”와 비교적 새로운 영역인 “정부가 무엇을 할지 예측하기(predicting what governments will do)” 사이의 충돌을 지적하면서 심각한 철학적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실업 문제에 대해 분석하면서도 실상 자신의 실업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르는 규범경제학자들은 이제 모두 자신이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음을 깨닫고 일자리를 반납해야 할 것인가?
Determinacy paradox를 어떻게 해석하고 극복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우선 경제학자의 조언이 존재할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불확실성 및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의 목적함수에 대한 고찰은 논의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언제 어떤 경우에 정부는 스스로 사회 후생을 극대화하는 존재로서 기능할 것을 선택하는가? 경제학자의 조언이 의미 있는 행동이 되려면 양자 간에 어느 정도의 이해관계의 일치가 요구되는가? 정부의 목적함수와 사회후생함수가 현저히 괴리될 경우에는 결코 경제학자의 조언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가?
이러한 이슈들은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우선 우리의 논의에서 사회후생함수의 극대화를 자신의 목적함수로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은 “경제학자”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하기로 한다. (이것은 물론 모든 경제학자가 동일한 정책 제안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실증적 결과를 공유하더라도 사회후생함수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상이한 가중치 부여가 가능하므로 각자의 정책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정부의 목적함수가 무엇이든지 간에 이를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전문적인 조언자에게는 물론 애당초 determinacy paradox란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불확실성 하에서 정부와 경제학자의 정보 주고받기 게임은 다양한 모형 설정이 가능하며, 그 중에는 특수한 조건 하에서 만약 정부와 경제학자의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차이를 보인다면 정부의 정책 결정이 경제학자의 조언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이론적 결과도 있다. (Basu, 1997) 그러나 여기서는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생략하고, 대신 우리의 직관을 따라서 일반적으로 정부의 목적함수와 사회후생함수가 비슷한 경우에는 경제학자의 정책 조언이 정부에 의해 경청될 충분한 여지가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회후생을 향상시키는 변화 방향이 정부의 목적과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정부와 경제학자 모두 현 상황을 변화시킬 동기를 공유하게 된다. 이 때 사회적 최적 정책과 정부의 목적을 최적화시키는 정책 사이의 영역이 양자간의 게임에서 협상 가능한 영역이 될 것이다. 비록 사회적 최적점을 정부가 선택하도록 조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이 경우 사회적으로 차선의 정책 또는 그 다음의 정책 또 그 다음의 정책 등등 정부가 수용 가능한 개선책들을 조언하여 사회 후생 향상을 도모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 봄직한 의미 있는 행위가 될 것이다.
한편 정부의 목적함수와 사회후생함수가 현저히 다른 경우라고 할지라도, 정부가 마치 자신이 사회후생을 극대화하는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게 되는 흥미로운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최적화 문제가 무제약하의 최적화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일정 제약하의 최적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정부는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사회후생을 극대화해야 할 당위성을 갖지만, 국민으로부터 정권을 위임받는 순간 이와는 전혀 다른 목표를 추구할 인센티브와 가능성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설령 철저하게 특정 그룹("ruling elite")의 부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정부(proprietary state)의 경우를 가정한다고 할지라도 정부의 정책은 항상 credible해야 하는 제약을 가지며, 과도한 rent-seeking은 국민들의 생산 활동의 인센티브를 약화시키고 대신 조세 회피를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낳는다. 또한 홀대 받은 국민들에게는 선거, 혁명 등 제도권 안팎의 다양한 수단을 통하여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
결국 일정한 조건 하에서는 정부가 사회후생 극대화와 전혀 다른 자신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처한 제약 조건에 따라 사회후생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보일 수 있다. 이 경우 물론 경제학자의 정책 제언은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이며, 정부의 목적함수가 사회후생함수와 비슷한 경우와 더불어 determinacy paradox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우를 형성하게 된다. 정부가 처하는 제약 조건과 정부 행태에 대해서는 심도 깊은 연구가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제약조건이 미약하여 정부가 경제학자의 충고에 귀 기울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라면, 사회후생 향상의 당위성을 실천하지 않는 정부 행태에 대한 비판과 일반 대중에의 조언이 경제학자의 궁극적인 역할로 남겨지게 된다. 규범경제학자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일반 대중을 향한 설교(preaching to the public)임은 멀리 케인즈와 스미스까지 소급되는 경제학의 오랜 전통 선상에 위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경제학자들은 종종 자신들을 기업과 소비자 행동의 관찰자로 간주하면서도 정부에 대해서는 조언자라고 생각하는 자의적인 태도를 견지하여 왔다. 그러나 논리의 정합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행동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관찰자(observer)로서의 경제학자의 역할과, 정부의 행동을 인도하고 또한 자신의 행동이 관찰자로서의 경제학자가 설명하고 예측하는 일부분이 되는 조언자(adviser)로서의 경제학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조언자로서의 경제학자들이 과거보다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음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자신의 진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사회적으로 최적인가를 판단하는 어려운 과제를 일차적으로 통과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룡에게 오버코트를 입으라고 충고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 자진하여 옷을 입을 리 만무한 공룡의 제약조건을 변화시켜서 오버코트를 덧씌울 방법은 없는지, 그것도 안 되면 오버코트 대신 다만 홑저고리라도 입히는 방법은 없는지 등을 고뇌하며 지새워야만 하는 무수한 불면의 밤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의 아이디어가 갖는 생명력과 중요성에 대하여 굳건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Keynes의 언명이 이들에게 한 줄기 격려가 될 수 있을는지?
"... the ideas of economists and political philosophers, both when they are right and when they are wrong, are more powerful than is commonly understood... Practical men, who believe themselves to be quite exempt from any intellectual influences, are usually the slaves of some defunct economist. Madman in authority, who hear voices in the air, are distilling their frenzy from some academic scribbler of a few years back. I am sure that the power of vested interests is vastly exaggerated compared with the gradual encroachment of ideas. Not, indeed, immediately, but after a certain interval... But, soon or late, it is ideas, not vested interests, which are dangerous for good or evil." (J.M. Keynes,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중에서)
* 참고문헌
Basu, Kaushik (1997), "On Misunderstanding Government: An Analysis of the Art of Policy Advice," Economics & Politics 9, pp.231-250.
Kim, Jeonghyun (1999), "On the Determinacy Paradox: Is It Really Paradoxical?", Manuscript, Brown University.
O'Flaherty, B. and J. Bhagwati (1997), "Will Free Trade with Political Science Put Normative Economists Out of Work?", Economics & Politics 9, pp.207-219.
Stigler, G. (1982), The Economist as Preacher and Other Essays, 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 약력 ----------------------------------------
+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 Brown University 경제학 석사
+ Brown University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