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전도연과 박해일이 주연한 “인어공주”라는 영화의 시사회를 제주도의 우도에서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영화 촬영에 협조해준 우도 주민에게 감사하는 뜻에서였다고 하는데 평생을 물질(material 아님)로 살아온 우도의 할머니들 중에는 태어나서 영화를 처음 보았다는 분도 여러분 계셨다. 기회만 있으면 침 튀기며 문화적 빈곤의 타파와 문화격차 해소를 역설해온 나에겐 별반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 서울에도 평생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 새삼 다른 속도로 발전하는 사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일전에 내가 존경하는 한 교수님은 자신은 농경사회에서 태어나 산업사회에서 장년을 보내고 초로의 나이에 정보사회를 맞이했다며 참 힘든 생이었다고 회고하신 적이 있다. 물론 웃으면서 하신 말씀이었지만 힘든 것이 그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분이 태어났을 때 한국은 이제 겨우 식민지 상태를 벗어났을 테고 어린 나이에 참혹한 전쟁과 빈곤을 체험했을 것이며 60년대 말 어렵사리 대학에 입학해서는 끊이지 않는 시대의 고난과 실존적 고민을 동시에 품느라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하긴 책 속의 세상과 책 밖의 세상이 동시대가 아니었던 탓에 잠 못 이루었던 사람이 어디 그 분뿐이겠는가. 나와 동시대인인 사람들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많은 지식인들은 서구 사회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며 성장했다. 세상의 시계가 몇 시인지를 생각하며 그 시간에 맞추려고 하다보니 늘 늦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화에 관한 한 한국은 남부럽지 않은 처지가 된 모양이다. 최소한 도시 지역에서 초고속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를 찾는 일은 열려 있는 화장실을 찾기보다 더 쉬운 일이 되었다. 휴대전화 가입자수 3,500만 시대를 맞아 남아도는 공중전화 부스는 전방의 장병들이 나라 지킬 때 바람막이로 재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지구의 시간을 앞서가는 행복한 국민이 되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IT처럼 시대의 전환을 가져올 만한 신기술의 확산 과정을 가장 먼저 체험하면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백 년을 산다 해도 두 번은 찾아오기 힘든 호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서구이론을 갖다가 쓰기는 힘들게 되었다는 불이익(?)을 떠안게 되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에 쏠려 있는 세계의 눈과 귀는 정보화로 인한 편익뿐만 아니라 부작용에 대해서도 열려있다. 선발자의 고뇌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흔히 한국의 근대화를 ‘기적’이라고 표현하거나 ‘압축적’, ‘돌진적’이라는 수식어로 묘사한다. 모르긴 해도 한국이 정보화에서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압축적, 돌진적 발전 모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의 요체는 자원의 배분에 따른 기대효과를 미리 계산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아닌 가장 빨리 이익이 나는 곳에 인풋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헌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손해는 우리 사회 전체가 부담하지만 운이 좋아 이익을 내면 그것의 대부분이 일을 추진했던 소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갈등의 상당 부분이 바로 그 압축성과 돌진성으로부터 배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회의 주류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다. 당신은 컴맹, 넷맹이며 시대에 뒤처진 사람, 나아가 유목적 사고가 불가능한 붙박이 꼴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눈이 핑핑 돌아가도록 급속히 변하는 사회에서 길을 잃지 않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데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함께 열차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불친절하다. 지난 6,70년대에 우리의 많은 누이들이 오빠를, 남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공장에서 일했지만 그 누이들이 오빠와 남동생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창피해하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보고서들이 많이 나왔지만 무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빈곤이 얼마나 중층적이고 다차원적인지를 보여주는 보고서는 별로 보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경제적 빈곤이 문화적 빈곤으로, 사회적 배제로, 지식정보 박탈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경제적 빈곤을 야기하는 가운데 기회의 불평등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증대하였다는 사실이다.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의 저자 리프킨에 따르면 토지, 자본, 노동에 이어 지식/정보가 매력적인 상품이 되었고 나아가 체험 상품이 각광받고 있단다. 분명한 것은 상품이 되기 위해 그 지식과 체험의 단위(unit)가 점점 분절화, 파편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기술적 의미에서 이동성이 증대하는 동안 사회적 이동성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산업사회로부터 정보사회로 가는 길에서 “하면 된다”는 구호는 “사면 된다”로 바뀌어버렸다. 행복은 구매력 순이 된 것이다.
나는 산업사회보다 정보사회가 어떻게 더 나은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보기술은 분명 시공간적 제약,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는 자유로운 소통에 대한 꿈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보사회의 꿈은 뒤에 남겨지는 사람들의 역할과 기여에 대한 사회적 인정에 기초해야 한다. 사실 어떤 사회든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발전하는 경우는 없다. 꽃도 한 번에 피지 않고 열매도 한꺼번에 열리지 않는 것처럼. 그 빠르고 늦은 차이는 길게 보면 정말 아주 작은 차이일 뿐이다. 나는 한 사회가 뒤에 남겨지는 사람들에 대해 기울이는 관심의 정도는 그 사회에 남아있는 희망의 양과 비례한다고 믿는다. 느려터진 건 질색이라는 광고 카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귀성의 물결은 압축적 근대화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가 농촌에 지고 있는 채무의 양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200년간 서구의 사회과학은 산업화로 인해 뒤에 남겨지게 된 사람들에게 산업화의 과실을 어떻게 나누어줄 수 있을까 하는 연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것은 사회과학자들이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고 산업화가 그 사람들을 만들었으며 그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서 산업화가 가능했다는 객관적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정보격차니 정보불평등이니 하는 것을 문제로 제기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소외계층에 컴퓨터를 많이 보급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어찌 보면 가장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 컴퓨터로 ‘맞고’ 이외에는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이들의 보폭에 자신의 생각의 속도를 맞추는 것,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 일원으로서의 프라이드와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는 것, 정보화에 대한 노력만큼 연대와 소통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네트워크 안과 밖에서 사고하기 - 이제 겨우 연구원 생활 1달째를 맞은 나의 연구노트에 써놓은 생각이다.
-------- * 약 력 * -----------------------------------------------
+ 서울대학교 사회학 학사
+ 서울대학교 사회학 석사
+ 파리 Ⅴ대학 사회학 박사
+ 2000.10 ~ 2001.09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빙연구원
+ 2002.02 ~ 2003.01 :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
+ 2003.01 ~ 2004.05 :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