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통신의 미래 모습으로서 유비쿼터스 혁명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유비쿼터스 환경을 가능케 해 주는 것이 BcN(Broadband Convergence Network; 광대역통합망)이다. BcN이란 통신·방송·인터넷이 융합된 광대역 멀티미디어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끊김없이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통합 네트워크라고 정의된다.
BcN 환경으로 가는 과정에서 최근 통신사업자나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이 기존의 서비스들을 결합한 다양한 번들 서비스를 앞 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이른바 트리플 플레이 서비스(VoIP+인터넷+방송), 무선랜/무선인터넷 결합상품, 원폰(유선전화+이동전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앞으로 나올 휴대 인터넷도 이동전화나 초고속인터넷과 번들로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 이용자의 수요나 기술발전의 추세에 비추어 번들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시장의 지배적사업자가 번들링을 통해 융합된 시장에서도 지배력을 전이, 유지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융합환경에서 번들링이 어떻게 나타나고 경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규제당국의 관심이 크다.
융합은 서로 무관한 상품들이 대체/경합 관계를 갖게 되는 대체성 융합과 서로 보완성을 갖게 되는 보완성 융합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대체성과 보완성이 혼재한다.) 대체성 융합은 유선전화와 이동전화의 관계 그리고 PC와 휴대폰의 관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동전화는 초기에 가격이 매우 높고 휴대성이 부족하여 일부 계층에서만 차량용으로 사용하였으므로 유선전화와는 독립적이거나 보완적 관계였다. 그러나 단말기 소형화 및 커버리지 확대 등 기술발전과 가격인하로 수요가 확대되면서 유선전화를 상당한 정도로 대체하게 되었다. 휴대폰과 PC는 용도가 전혀 다른 제품이었다. 휴대폰은 음성통신 목적으로, PC는 개인이나 조직의 정보처리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기술발전으로 휴대폰이 무선 인터넷 플랫폼 기능을 갖추게 되었고 PC는 네트워크화된 정보통신기기로서 인터넷 이용 및 음성과 데이터를 모두 지원하는 통신기기 플랫폼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휴대폰과 PC는 일정한 보완관계 속에서도 대체관계로 바뀌고 있다.
한편 어떤 두 상품을 동시에 사용하거나 그 상품들을 하나의 제품으로 조립/통합함으로써 별도로 사용하는 경우에 비해 소비자들이 보다 높은 효용을 얻게 되면 상품간 보완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융합의 진전은 개별 상품들의 상호 보완성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휴대폰에 디지털 카메라를 통합하여 촬영 파일을 휴대폰에 저장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송할 수 있도록 제품이 설계되는 것은 보완성 융합이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복합 사무기기(fax+복사기+스캐너)는 문서를 복사하고 복사된 문서를 다시 팩스로 전송하고 이를 다시 스캐너를 이용하여 컴퓨터에 저장하던 과정을 하나로 줄여줌으로써 개별제품의 단순 결합이 아닌 보완적 융합이다. 최근 KT가 출시한 원폰은 코드리스 폰과 휴대폰이 결합된 것인데 이용자가 실내에 있을 경우 자동으로 유선전화 발신이 되도록 하는 기능을 포함함으로써 보완적 융합을 이룬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별개의 상품을 결합된 형태로 판매하는 것은 매우 다양한 동기에서 비롯된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생산비용이나 거래비용의 절감, 가격 차별화 그리고 한 상품에 대한 지배력의 다른 상품시장으로의 확장(전략적 동기)이라 할 수 있다. 비용절감적 동기는 효율성을 제고시켜 경쟁촉진적 효과를 갖는 반면, 전략적 동기는 경쟁제한의 가능성이 있다. 가격차별화 동기는 경쟁에 미치는 효과가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융합은 경쟁촉진적 동기와 경쟁제한적 동기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시장간 대체성을 증가시키는 융합은 번들링의 동기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첫째, 기존 시장이 다른 시장과 경합성을 갖게 되어 기존 시장의 지배력이 약화되면 번들링을 통한 지배력 전이가 어렵게 되므로 지배력 전이를 목적으로 하는 번들링의 유인이 약화될 것이다. 둘째, 기존의 어떤 한 상품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사업자가 다른 상품시장으로부터의 경쟁 위협을 예상하면, 이 독점사업자는 다른 상품이 자기 상품과 충분한 경합성을 갖게 되기 전에 그 시장을 독점화하여 경쟁위협을 차단하고자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체성 융합의 초기단계에서는 기존 지배적 사업자의 번들링 유인이 증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번들링 동기는 다른 시장으로의 지배력 확장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존 시장의 독점을 방어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최근 번들링(끼워팔기) 이론에서 동태적인 시장환경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종 부문간 보완성이 강화되는 보완적 융합이 진전되면 각 부문은 새로운 시스템 시장의 한 구성요소의 의미를 갖게 된다. 기존에 자기 부문에서 상당한 지배력을 갖고 있던 사업자들은 보완적 협력자로서 새로운 시스템 시장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전체 시스템을 장악하기 위한 잠재적 경쟁관계에서 기존 핵심적 자산을 바탕으로 부족한 자원을 보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번들링이나 인수합병 또는 제휴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시스템 시장에 참여하게 된다.
모든 조건이 일정할 때, 특정 지배적 사업자의 번들링 또는 수직적 통합 행위는 지배력을 다른 부문으로 전이시키는 경쟁제한적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부문별 지배적 사업자들간 연관성이 강화됨으로써 수직적 견제력이 균형을 이루게 되면 여러 사업자들이 동시에 추구하는 수직적 제한행위의 효과가 상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뭏든 보완적 융합의 진전은 번들링과 수직적 통합 등 전략적 대응의 유인을 제고한다.
그러면 BcN한경하에서 번들링은 경쟁에 어떠한 영형을 미치게 될까? 융합에 따른 대체성 증가는 기존 시장지배력을 약화시켜 번들링을 통한 지배력 확장 가능성을 약화시킴으로써 번들링의 유인뿐 아니라 효과도 감소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한경변화를 미리 예상하고 대체 위협을 봉쇄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기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방어적 번들링은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융합으로 인하여 대체관계가 형성된 각 시장의 기존 주도적 사업자들이 먼저 자기 부문을 방어하고자 하여 번들링 경쟁이 일어난다면 보다 넓게 정의된 시장에서는 번들링으로 인하여 경쟁이 증가할 수 도 있다.
융합으로 부문간 보완성이 증가하고 보완적 부문들이 결합된 새로운 서비스가 출현하면 이러한 번들링은 새로운 서비스 시장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므로 효율성을 증가시키고 친경쟁적인 효과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각 보완적 부문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각 부문의 지배적 사업자들간 제휴/통합으로 새롭게 형성된 통합 시장의 집중도가 증가함으로써 경쟁이 감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실제 융합현상은 대체성과 보완성을 동시에 갖고 진행되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융합의 성격이 바뀔 수 있어 번들링의 유인변화와 그에 따라 경쟁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복합적이고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 그동안 기술혁신의 역사를 보면 대체로 신기술은 기존 상품을 단기에 직접 대체하기보다는 보완성을 띄거나 일부 수요계층만을 타깃으로 등장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존 상품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번들링의 경쟁효과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특정 결합상품의 시장을 둘러싼 융합 환경을 이해해야 하는데, 대체성과 보완성이 공존하고 동태적으로 변화하는 현실 상황에서는 이러한 판단은 쉽지 않다. 더욱이 전통적 시장분류에 따라 한 부문에서 발생하는 번들링도 융합으로 범위가 확대된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한 시장의 여러 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번들링 경쟁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시장획정에 따라 경쟁제한성 여부가 크게 달라진다. (예: 통신사업자의 ‘인터넷+VoIP+방송’ 결합상품 vs. 방송사업자의 ‘방송+VoIP+인터넷' 결합상품)
BcN으로 진화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통신사업자의 번들링행위는 경제학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주제이겠지만 사안별로 경쟁제한성을 판단해야 하는 규제당국으로서는 정말 골치 아픈 문제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규제당국은 전문성을 강화하고 시장에 대한 동태적이고 유연한 시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 * 약 력 * -----------------------------------------------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미국 UCLA 경제학 석사/박사
+ 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 역임
+ 한국산업조직학회 편집위원 (現)
+ 통신위원회 약관범령심의회 위원 (現)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공정경쟁연구실 연구위원 (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