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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전업주부다. 이제는 천연기념물이 된 세 아이의 엄마이며 가정교사이고, 아직도 Lavie en Rose를 부르짖고 사는 철없는 남편의 하숙집 아줌마이기도 하다. 얼마 전 유난히 더운 날, 밤늦게 축구를 보고 있는데 안방에서 자던 아내가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 넣어둔 식혜 한잔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있다. 마침 열 받고 있던 차에(한국축구는 아직도 멀었다), 참 고맙다 생각했는데 웬걸 수위아저씨 드릴 거란다. 저녁 무렵에 알루미늄 가건물에 갇혀 비 오듯 땀을 흘리시던 나이든 아저씨가 눈에 박혀 좀체 잠을 들 수가 없단다. 참 맛있게 고맙게 먹더라는 말에, 명절이면 허드레 양말 한 짝이라도 돌리지 않으면 배겨내지 못하는 아내야 전혀 낯선 모습이 아니지만, 이 삼복더위 늦은 시간에 가장을 밖에 보내고 애를 태울 가족들 생각에 일순 짠해진다.
이제 6개월 된 늦둥이 민이를 하루 종일 안고 있다가 간신히 재우고 나면, 새벽녘 술에 만취하여 문을 두드려대는 남편을 보고 갑자기 설움이 북받혀 눈물을 쏟고 마는 아내, 그래도 아침이면 잊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국을 내어 놓고도(반드시 뿌리째 끓여서 상온에서 식혀야 함) 토라져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아내가 참 고맙고도 미안하다. 낯선 이국에서 아옹다옹 둘만의 신접살림 꾸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결혼생활 벌써 12년차에 이사 갈 때마다 식구가 한명씩 불어 우린 5인 가족으로 대담하게 산다(부는 없고 상징만 있음). 가끔씩 신혼 때 찍은 사진을 꺼내 보며 청명한 날씨와 눈부신 코발트빛 하늘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어디 그뿐이랴! 우리가 정말 눈물나게 그리운 것은 함께 써버린 젊은 날의 시간에 대한 기억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반추일 것이리라, 예전엔 정말 이런 것이 그리울 줄 몰랐다. 사소한 일로 다투고 나면 장모가 보고 싶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눈물을 흘리던 아내, 빠듯한 유학생 살림에 결혼기념일에도 변변한 선물하나 주지 못하고 일해 번 돈으로 1달러 지폐 100장을 빳빳한 신권으로 건네주는 못난 남편을 참 사랑스레 바라보던 아내, 세 번이나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내 손을 한동안 꼭 잡고 있던 아내. 고백하건데, 나는 그이에게 참 많은 죄를 짓고 산다. 언젠가 우연히 아내의 학창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청순하고 해맑은 모습이 내보기에도 영 딴 사람 같아서 아이들에게 이 사람이 너네 엄마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고개를 가로 젓는다(애들아, 우리가 엄마를 그렇게 만든 공범이 아니겠니?)
어느덧 연구원에 들어 온지도 5년이 지나가고 있다. 많은 일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유년시절 내가 그랬듯이 난 아빠가 하고 있는 일을 가족들이 정말 자랑스러워하길 바라지만, 정작 아내는 여태껏 한번도 회사 일을 물어본 적이 없고 아이들도 아빠가 하는 일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판사도, 의사도, 교사도 아니고 정보통신이란 것도 도대체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을 테니까.
나는 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박사도 연구책임자도 아닌 그들의 하나뿐인 아빠이고 남편임을, 그리고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는(?) 것임을. 아이들은 예전처럼 카드놀이와 여행도 자주하고, 피터팬이 알라딘이 되었다가 갑자기 해리포터로 변하는 그런 황당하고도 마술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바랄 것이고, 아내는 그 곁에서 시원한 식혜 한잔으로 함께 사는 작은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이제나저제나 소망하고 있으리라. 이제 정말 돌아가야겠다. 오늘 퇴근길에는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치즈케잌을 사들고 가서 그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나훈아의 ‘사랑’을 정성스레 불러줘야겠다.

“돌아가리라 논밭이 곧 황폐해질 터인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스스로 마음을 몸의 노예로 삼고 어찌 낙담하여 홀로 슬퍼했을까.
지난 일은 뉘우쳐도 소용없고 닥칠 일은 바르게 할 수 있음을 알겠거니“ -도연명-
ps. 이번 겨울이면 전세생활을 마치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 일찍 집에 들어가면 행여나 또 식구하나 더 늘어날까봐 걱정도 되지만 모든 게 하늘의 뜻이리라. 修身齊家治國平天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