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해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행정기관에 들를 일이 잦았다. 새로 이사한 전세아파트 관련 대출 서류와 연구원 입사관련 구비 서류 때문에 여러 가지 공문서들이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지방자치단체 사무소를 찾았더니 예전과는 무척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매우 오랜만에 찾았던 행정민원창구인데, 깨끗해진 시설에 놀랐고 또한 몰라보게 친절해진 공무원들 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전산화 된 민원서비스 환경이었다. 모든 직원들의 책상 위에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 있고 모두 인터넷 또는 행정망에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다양한 서류들을 짧은 시간에 척척 발급해 주는 것을 보면서 ‘역시 우리나라는 정보화 강국이야’ 라고 생각했다. 유학 시절 우리나라 정부의 정보화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이고 많은 나라들이 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뿌듯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를 실제로 경험하게 되니 더욱 실감이 났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사무소에 자주 드나들게 되면서 이런 뿌듯했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차츰 실망감이 솟아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정부의 정보화가 외부에 알려진 만큼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전자정부의 으뜸 되는 목적은 더 나은 정부 (a better government)가 되는 것이다. 더 나은 정부가 무엇인가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글쓴이는 더 나은 정부란 국민에게 보다 효율적이고 가치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정부는 보다 효율적인 정부이다. 즉, 더 적은 인적/물적 자원을 가지고 같은 수준의, 아니면 더 나은 정부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정보화 시스템은 이를 가능케 하는 기반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부의 공공정보화 수준이 우리 정부를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었는지는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듯 하다. 아직까지 모든 정부조직에 관한 정보화 평가 작업이 진행되어 있지도 않고, 정보화 투자에 따른 이익을 산출해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부 업무들의 많은 부분이 더 효율적이 되었다는 것은 대부분 부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글쓴이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거나, 일부 발표되어 나오는 자료들을 보아도 그러하다. 최근 행정자치부 조사에 의하면 시/군/구행정정보화 시스템이 17,700여명 공무원 인력대체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물론 이는 단축된 업무시간, 그리고 그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 등을 인력으로 환산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정보화는 예전에는 시도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가능케 하여 정부가 높은 가치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절약된 공공자원이 어떻게 다른 업무에 쓰이는지 잘 관리되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예를 들어, 예전에 세 명이 담당했던 업무를 정보화 시스템 설치 이후 한 명이 담당하게 되었다면 다른 두 명에게는 당연히 다른 업무가 주어져야 한다. 민간조직에서는 이런 경우 재배치보다는 감원이라는 방법을 택한다. 과거 공장자동화에 대한 반발 등은 이런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공공조직의 경우, 조직원들의 신분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민간조직에서와 같은 일방적인 감원을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공공조직에서는 정보화로 인해 생산성과 효율성이 증가한 경우, 절약된 인적자원들의 배치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공공부문의 정보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만약 재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중요한 인적/물적 낭비를 초래할 것이다. 많은 조직을 심도 있게 조사해 보지는 못했지만 글쓴이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사례는 한 단적인 예라고 생각된다. 한 지방자치단체 사무소를 들르게 되었을 때,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민원서류에 착오가 있어서 오류시정을 위해 민원창구를 통과해 칸막이를 둘러서 사무실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마침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 다른 담당자가 서류를 처리하느라고 시간이 좀 걸려, 주위를 살펴 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맨 뒷줄에 있는 책상 앞에 서서 민원창구 쪽 직원들의 컴퓨터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뿔싸! 거의 모든 컴퓨터들에는 업무관련 화면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네이버, 신문, 소설, 메신저 등의 화면만 가득 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업무화면이 떠 있는 직원도 언제든지 ‘놀이모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작업표시줄에 여러 색깔의 작은 창들이 가득히 열려있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뒤로 행정기관에 들를 때마다 유심히 직원들의 화면에 무엇이 떠 있는가를 살피게 되었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경우 업무와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용무에 관련된 화면이 떠 있는 것을 보곤 했다. 행정정보화를 통해 일의 부담은 적어졌지만 인원의 재배치는 이루어지지 않아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만일 이런 현상이 일정 사무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라면, 절약된 행정자원이 헛되이 쓰이고 있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덧붙이면, 공공부문의 정보화가 많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보화의 실익을 온전히 누리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그 이유는 업무내용이 정보화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정부의 정보화 노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 중의 한 가지는 공공업무흐름의 재조직화 (BPR)일 것이다. 기존의 업무행태와 조직을 그대로 둔 채 기존 업무흐름을 전산화만 한다면 우리는 정보화가 가져다 줄 수 있는 혜택의 절반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이미 정부 각 부문의 전산화 노력은 어느 정도 일정한 괘도에 이르렀다고 평가된다. 이제는 업무의 흐름과 조직이 전산화에 걸맞게 변화하여야 될 때라고 판단된다. 예를 들어, 우리 딸이 외국에서 출생한 관계로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기 위해서 지방자치단체 사무소와 출입국사무소 그리고 외교통상부에 번갈아 전화 통화를 했는데, 답변하는 내용이 제각각 달라 꽤 애를 먹었다. 같은 수직조직상에서는 정보화가 잘 이루어져 있는 듯하지만 여러 부서에 걸친 같은 업무(line of business)를 일관되게 처리할 체계는 아직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인 듯 하다. 만일 일선 창구에 있는 담당공무원의 컴퓨터 화면에 이런 일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들과 담당자 그리고 그에 따른 업무지침들이 실시간으로 제공될 수 있다면, 업무의 효율성이 많이 향상되리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이런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이미 기초 연구는 끝난 상태이며 올해부터 시범구축사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예상되는 많은 걸림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를 바라는 것은 공공부문 정보화의 잠재되어 있는 효과들이 이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천문학적인 액수의 예산이 공공부문 정보화에 투자되었고 국민들은 그 혜택을 일상생활에서 누리고 있으며, 많은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성공사례를 배우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부문 정보화의 실제수준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모습과 일치한다고 생각되진 않으며, 정보화를 통해 제공될 수 있는 잠재적인 정부서비스 수준은 현재 제공되는 있는 서비스보다 현저히 높다고 판단된다. 요즘 혁신이 정부행정의 중심단어가 되어있다. 예전과 달리 전산시스템이 행정업무와 분리되지 않는 요즘, 공공부문 정보화의 혁신을 빼고는 정부행정의 혁신을 제대로 다루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공공부문 정보화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 약력 -------------------------------------------
+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학사
+ 평화복지대학원 공공정책학과 석사
+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LBJ School MPAff
+ Carnegie Mellon University Heinz School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