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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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사랑한다

  • 작성자권영주  주임연구원
  • 소속통신방송연구실
  • 등록일 2005.01.31

벌써 1/12가 가버린 2005년에 즈음하여,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구랍 성탄전야 본인은 아버지로부터 의미심장한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겠구나.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는지.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니.. 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아버지가 80년생 언저리에 태어난 구상유취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실 리 없을 것이고, (단순히 가슴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나타내신 게 확실한데, 그 문장은 약간 진부해진 유행 신조어라는 사실은 본인도 모르고 계실 듯 하다.) 지난주 통화에서 분명 업무에 방해된다고 점심 시간외엔 전화하지 말라하시던 예전처럼 무뚝뚝한 아버지가 아니셨던가. 그런데 왜? 얼핏 이해가 안되는 아버지의 감성 코드 표출의 이면에는 매우 간단한 무엇이 깔려있다. 바로 나의 결혼이라는 두 글자.
아직까지 무덤덤한 나 자신과의 의지와는 별개로, 겉으로는 딸내미가 좋아죽겠다며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지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은 정작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 듯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 표출되고 있다. 굳이 사례를 들어 설명하자면, 무뚝뚝한 우리 아버지가 요근래 보이시는 감성적 태도가 그 하나이며, 눈물 흔한 우리 오빠와 엄마가 밥 먹다말고 울어버린다거나 등의 이해할 수 없는 돌발적 상황의 연출이 다른 하나일 것이다. 내가 가족들에게 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아니 조금 더 상세하게 아버지에게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우문일지도 모른 이러한 질문의 답을 아버지와의 추억을 통해 되씹어 보려한다.

일단 우리 아버지에게 떠오르는 두 가지는 아령, 그리고 꾸짖음이다. 오십견 진단을 통해 웨이트 트레이닝 불가 판정을 받기 전까지 아버지는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전까지 헬스장을 나가시는 열혈 보디빌더로서, 우리 두 남매는 어린 시절 아버지 팔뚝에 대롱대롱 매달려 주로 사진을 찍었고 항상 집에는 아령세트가 곳곳에 있었다(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대한 애사심의 여러 요소 중, 주요한 한 가지가 헬스장이라는 사실 역시 보디빌딩에 관한 남다른 가풍이 크다고 부인하지 않으련다. 또 하나 아버지가 느끼시는 고통은 팔의 불편함이 아니라 가늘어진 팔뚝이시란다). 그렇게 힘이 좋으신 아버지가 때리는 회초리는 살짝 닿기만 해도 무척 아팠을 뿐더러, 애정의 방식을 다정다감함 보다 엄격함으로 나타내시던 아버지는 어린시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셨다. 초등학교 때 동네 언니가 대신해준 방학 공작 숙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학 이틀 전 과감히 딸의 숙제를 휴지통에 넣어 버리셨던 분(상견례 때 사돈되실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셨다. 그때 본인도 매우 미안하셨나보다). 대학교 때 친구랑 전화하다가 노트를 찢어 무얼 적는 상황을 목격하시고는, 성인이라고 나름 생각하는 스무살 딸의 공책 검사를 하시며 회초리를 드신 분. 칭찬에는 어찌나 인색하신지, 얼떨결에 고등학교 입시에서 만점이라는 예상외 대박을 터트렸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운이 좋았으므로 자만하지 말라고 하시질 않나,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해드렸더니 , 쌩뚱 맞게도 경제학과 공부 따라 갈 정도로 네 머리가 좋지 않다는 말씀을 하시던 분.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한테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하면 마술같이 나오는 데, 우리 아버지는 어디에 쓸건데 하며 출처가 희미한 용돈은 덥썩 주시지도 않을뿐더러, 그나마 오빠가 세뱃돈 모아서 동생한테 사준 마론 인형을 보시자마자 불호령을 내리시며 이런 소꿉 장난하고 놀면 머리속에 허영심만 가득 찬다고 오빠와 나를 함께 야단치시던 분.

그렇지만 아버지는 미시적 부분에 있어서의 엄격함과는 달리, 인생의 선택 등의 거시적 부분에 있어서는 한없이 관대하셨던 분이다. 갑자기 고삐가 풀린 젊은 날의 자식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안 봐도 훤하신지, 반항과 일탈의 코드가 나타나도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너무도 관대하셨다. 대학에 들어간 오빠가 입학식 바로 다음 날, 오른쪽 귀를 뚫고 염색한 머리에 무릎이 터진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을 때 아무 말씀 없이 빙그레 웃고 돌아서시던가하면(난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었다.) 95년도, 공부 열심히 하고 있을거라 믿던 딸이 5.18 특별법 데모 관련해서 구호 외치고 있는 모습이 정면으로 신문에 나왔을 때도 주변 사람의 수군거림에는 전혀 동요되지 않으시고 정작 딸에게 끝까지 모른 척 해주시던 분. 공부 안하고 학생회 활동한다며 학사경고 수준까지 갔던 딸에게 조용히 등산을 가자고 말씀하시고는 산 정상에서 본인의 대학시절에 대한 후회담을 여과 없이 솔직하게 말씀하시던 분. 그래서 인생을 조금 더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간접적으로 일깨워주셨던 분(그 당시 뜨거운 물 한잔을 보온병에서 따라주시며, ‘청춘의 혈기만 좇다가 후회하면 이미 때는 늦었더라’ 하며 시작된 아버지의 지난날 이야기가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그러나 아직 마음속에 호랑이는 살아있는지, ‘저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라고 물어볼때 화를 버럭내시며, “네 인생이니 네가 책임져!”라는 말만하시고 한발 물러서시는 분. 또한 결혼하겠다고 낯선 남자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 “네 성과 본관이 뭐냐”만 물어보시고는 “내 딸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내가 이 주먹으로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겠다”며 협박만 하시는 독특한 방법으로 사랑을 표출하시는 우리 아버지.

기억을 반추할수록 엄격함 속에 묻어있던 아버지의 사랑을 왜 미리 이해하지 못했더랬나하는 후회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또한 내가 많이 무심했구나 하는 죄송스러움이 밀려온다. 아버지인들 어린 내게 용돈 듬뿍듬뿍 쥐어주며, 꺄르르 아빠 최고 하는 말초적 반응이 왜 싫으셨겠는가. 또한 자라면서 선택하는 매순간에 어린 딸이 왜 안타깝지 않으셨겠는가. 단지 좀더 성숙한 인간이 되라고 또한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인간이 되라고 매를 드시고 한발 물러서신 것일텐데. 이제서야 하나밖에 없는 딸이 아버지의 깊은 맘을 먼지한 끝만큼 이해한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또한 어린시절에는 무섭다는 핑계로, 커서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자라서는 연애한다는 핑계로 아버지한테 살가운 말 한마디 못 해드린 것이 너무도 죄송하다. 나는 밖에서만 명랑한 못난 딸인데, 결국 한달 후면 무언가 허전함에 외로워하실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는 말이 겨우 죄송해요, 사랑해요 밖에 없는데.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찡해온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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