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평소에 익숙하거나 자신이 겪은 것들에 대하여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곁에 있을 때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하여 모르다가 멀리 떠나 있게 되면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 좋은 예다. 올해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미얀마 정보통신개발 지원사업 마스터플랜 수립’이라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고 필자도 그 중 한 모듈을 수행하게 되어 미얀마(구 버마)에 두 차례 출장을 다녀오는 과정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에 대하여 새롭게 느낀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얀마의 경제상황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초반 수준으로 1인당 GDP가 150달러 정도로 1만달러를 달성하기 위하여는 매년 GDP가 10%씩 성장한다고 가정해도 인구증가를 감안하면 약 50년이 걸린다. 바꾸어 말해 1960년대 초반에 100달러 수준이었던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이 2004년에 1만5천달러가 된 것은 달러화의 가치하락을 감안하더라도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저기 자료도 뒤져 보고 내가 아는 모든 기억을 뒤져 보아도 45년만에 한 국가의 1인당 GDP가 150배 이상 늘어난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례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단지 그 안에서 있었기 때문에 크게 느끼지 못하였을 뿐이다. 2005년 성장률이 4%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예측이 암울하게 느껴지는 것도 시내버스가 감속할 때보다 KTX가 감속할 때 더 큰 느낌이 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의 경제발전이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다 아는 내용이지만 우선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시하였고 수입대체보다는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을 취하였다. 이러한 정책이 성공한 데에는 한국인이라는 근면하고 교육열이 높은 인력이 뒷받침하였기에 가능하였다. 이러한 각각의 요소에 대하여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1960년대 초 버마는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부유한 국가였고 국제적으로도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축구도 한국만큼 잘했다. 1961년부터 10년간 UN 사무총장을 지낸 우 탄트도 버마인이고 아시아축구 최고의 스트라이커 윈몽도 버마인이다. 1962년에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서 1988년까지 소위 ‘버마식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사회복지정책에 중점을 둔 정책을 추진하여 경제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일례가 대일청구권배상금의 상당부분을 한국에서는 대부분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소양강댐 등 사회기간시설의 건설에 배정하였지만 미얀마의 경우에는 상당 부분 복지정책에 할애하였다. 경제는 성장하지 못하였으나 농업생산량이 자급자족을 하기에는 충분하여 큰 문제는 없었다. 1988년 이후 또 다른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고 자본주의체제를 표방하였으나 경제는 아직까지 제자리 걸음이다. 1990년 총선거에서 아웅산수지 여사가 이끄는 정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였으나 군사정권이 권력이양을 거부하고 아웅산수지여사를 가택연금한 사건에서 시작된 미국에 의한 경제제재와 2003년에 미얀마로의 송금금지조치로 인해 서구자본이 유입이 되지 않아 산업발전을 위한 seed money 마련에 제약을 받고 있다. ASEAN에 가입하고 있으며 일본, 중국, 한국 등과 교역하고 있으나 규모가 크지 않은 실정이다. 즉, 군사독재정권도 친미를 표방하면 용인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민주화과정을 거쳐야만 외국자본도입을 통한 경제발전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 현재 미얀마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수출주도가 아닌 수입대체를 표방하던 정책은 60~70년대에 유행하던 종속이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종속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부유한 국가들을 북, 가난한 국가들을 남으로 분류하고 남은 항상 북에 예속되게 되어 되므로 남에 속한 국가들끼리만 교역하거나 타국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체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이다. 이를 위해 수출주도보다는 수입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수입대체정책이 국가주권을 지키고 경제적 자립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문제점이 존재한다. 우선 어떤 제품을 수입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거나 생산비용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를 국내에서 생산하게 되면 국제가격보다 높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당분간 생산이 아예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투자효율성이 감소하여 소득이 감소하게 된다. 1970년대초까지 고속으로 발전하던 중남미 일부국가가 수입대체 정책으로 전환하여 실패한 경험이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1960년대 가발, 의류, 신발, 합판 등 단순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위주의 제품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을 추진하였다. 즉 저임금을 기반으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을 국제적으로 제값을 받고 수출하였으므로 수익성이 매우 높았다. 이는 동부문의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데 투자하거나 그 다음으로 수출가능성이 높은 산업에 투자할 수 있어 지속적인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성장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이슈가 분배문제이다. 노동생산성보다 낮은 저임금 노동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의 몫에 대한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1980년대 말의 민주화 이전에는 그들의 큰 희생이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고도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단순노동집약적 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각종 기능올림픽을 석권한 한국인들의 부지런함, 타고난 눈썰미와 손재주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례를 들어 보면 예전에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이 있었는데 수탉은 알을 낳지 못해 경제성이 없으므로 양계장에서는 암평아리만 키웠다. 감별사의 역할은 백열등 아래서 암수가 섞인 병아리들 중 두 마리를 양손으로 집어 깃털을 젖힌 후 생식기를 눈으로 잠깐 관찰하여 암수를 별도의 상자에 집어던지는 것이다. 1970년대 초반 병아리감별사 자격증을 따서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 이유가 한국인이 가장 오랜 시간동안(근면) 신속하고(손재간) 정확하게(눈썰미) 병아리 감별을 하기 때문에 미국의 양계장 주인들이 한국인 감별사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단순 노동집약적 산업에만 의존하게 되면 다른 개발도상국의 추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산업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며 그래서 1970년대 철강, 석유화학, 기계, 조선 등 중화학공업정책이 추진되었다.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걸었으나 당시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산업이 환경오염산업으로 취급되어 까다로운 규제를 받아 고비용구조로 전환되어 한국이 선택하는 경우 큰 위험 없이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자본축적을 하지 못한 개발도상국의 추격도 당분간은 염려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980년대 이후에는 소위 기술집약적 산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에는 가전제품, 조선, 자동차 등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1990년대에는 반도체, PC, 통신장비 등 IT산업이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2000년 이후에는 세계제일이라는 분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구조를 전환시킨 가장 큰 요인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능력 있는 인력이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향후에는 현재까지와는 다른 산업환경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IT 분야만을 본다면 BcN하에서 통방융합이 이루어지면 장비나 네트웍, 서비스 이외에 컨텐츠가 중요한 요소로 나타날 것이다. 컨텐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는 요인은 지금까지 한국이 우위를 창출한 산업들과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즉, 창의력과 예술성 등 근면성이나 기존의 교육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류열풍이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를 휩쓸고 있지만 구매력이 높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다. 동서양이라는 문화적 차이와 언어의 차이도 있겠지만 영화 등을 만드는 자금동원력이나 제작경험, 투입인력, 첨단기술의 수준 면에서 할리우드와 충무로는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쟁력 측면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향후 인력양성정책은 경쟁력 측면에서의 갭을 극복하고 산업종사자들이 창의력과 예술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 * 약 력 * -----------------------------------------------
+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 美 University of Hawaii, Manoa 경제학 석사
+ 美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경제학 박사
+ 공정경쟁연구실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