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는 지식 중심의 시대입니다. ‥‥‥ 이제는 학벌이나 지연이나 인맥이 아니라 누가 고부가가치와 고효율을 창출하는 지적 생산을 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신지식인이 되어야 합니다. ‥‥‥ 신지식인이야말로 국가경쟁력의 근간이며, 무한경쟁에서의 승리를 담보하는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뉴밀레니엄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준비하기에 한창이던 99년 초 어떤 대규모 행사에서 당시 대통령 치사 중의 일부이다. 그때의 화두는 단연 지식 또는 지식사회였다.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 갈 원동력으로서 지식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이 화두는 지금도 이어진다. 지식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 신지식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 당시에는 매우 새로운 개념이었고, 다가 올 시대적 변화를 대변하는 지식사회 환경에서 신지식인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사장되어 버린 것 같다. 그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이 단어를 등장시키는 실무적인 역할을 했다. 신지식인이란 “학력에 상관없이 지식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사람,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개선 혁신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인의 개념이 필요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당시의 국가 아젠다로 「창조적 지식기반 국가」 건설이 천명되고, 지식기반 산업육성과 창조적 지식인 교육 강화 등의 정책과제에 지식 또는 지식인 개념이 등장하고 있으나 고급 지식 소유자만을 지식인으로 간주하는 경향 때문에 정부정책 과제를 국민이 피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암기위주의 교육과 학력으로 평가 받는 사회의 폐단으로 독창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능동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할 경우, 지식기반 사회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 이와 함께 몇 가지 사례가 정리되어 대통령에게 보고 되었고, 그 당시 사회 환경에 적합한 아이디어로서 국민운동으로 전개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그 당시 일을 진행하면서 만나 보았던 몇 사람의 신지식인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발상으로 기존 농사방법을 개선하여 고 소득을 실현했던 버섯, 고추, 매실 재배 농민들, 창조적인 방법으로 고객의 구미를 만족시키고 1급 호텔의 주방장 겸 이사에 오른 요리사 아저씨, 최고 인기의 산업체 순회강사가 된 렌트카 회사의 자가용 운전사 등이 그들이다. ‘신지식인’적인 방법으로 그 분들의 활동이 계속되었을 것이고, 지금은 보다 나은 각자의 환경에서 더 크게 번성하였을 것이다.
“신”이라는 단어가 갖는 희화적인 어감 때문에 여러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저항과 반대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개념에 기초한 국민운동이 채택되어 초기에는 상당하게 확산되었지만 점점 왜소해져 지금은 그 명맥만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무려 6~7년이 지난 과거의 신지식인 이야기를 지금 꺼낸 이유가 있다. 첫째 그 개념의 순수함이 가려진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아쉬움 때문이다. 학력에 상관없이 실질적인 활동으로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는 사람이 대우 받는 사회가 정착되면, 학력 위주의 사회가 갖는 각종문제가 많이 해소되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일류 대학 우선주의와 입학을 위한 과도한 사교육비 투자, 사설학원과 족집게 가정교사, 특정 지역의 부동산 열풍 등의 문제가 많이 해소되지 않았을까?
둘째는 우리 연구원 인력 채용과정에서 느끼는 아쉬움 때문이다. 피상적인 관찰의 결과로서 극히 주관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고급학력과 출신학교의 브랜드(네임밸류)가 연구원 선발의 기준으로 너무 중시되는 것 같아서이다. 꼭 그런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신지식인의 개념을 유추하면 “좋은 인력”의 범위가 확장되어 여러 분야의 다양한 인재가 많이 선발될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인력이 뽑히면 우리 연구원의 목적에 맞는 활동을 크게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신지식인의 개념을 정리하여 보고하고 정부의 정책으로 만들기까지의 일들은 청와대와 관련 부처에서 진행되었지만, 그 아이디어의 시작은 바로 KISDI가 제공하였고, 그 이후 개념 확산과 국민운동 전개과정에서 KISDI가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 * 약 력 * ----------------------------------
+ Univ. of Washington 경제학 박사
+ 現)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디지털미래연구실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