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의 가을이 깊어지는 만큼 맨하탄의 허파 센트럴파크를 찾는 뉴욕커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 물들어 가는 나뭇잎 그늘 아래에서 낭만에 빠진 연인들, 건강을 위해 달리는 조깅족, 자연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 말년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노인들이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어우러져 저마다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센트럴파크 주변에서 한 정보통신인은 두 가지 즐길 거리를 더 발견한다. 공원 동남쪽으로 몇 거리 내려오면 이미 뉴욕 관광 책자마다 소개되어 있는 소니 원더 랩(Sony Wonder Technology Lab)이 있다. 이름 그대로라면 소니의 신기술 실험실이다. 하지만 이 실험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소니의 연구진이 아니라 센트럴파크를 찾는 그런 사람들이다. 대단한 실험을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소니의 신기술을 체험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려고 온다.
센트럴파크 서남쪽 모퉁이에는 삼성 익스피리언스(Samsung Experience)가 둥지를 틀고 있다. 삼성의 신제품을 체험하면서 한국인으로서 흐뭇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나그네의 직감으로는 소니 원더에서 힌트를 얻은 후발주자의 도전 작품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두 회사의 차이가 엿보인다. 소니 원더에는 휴먼로봇의 인사를 받고 백남준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비디오 복도를 지나면 여러 층에 걸쳐 소니의 기술을 간단히 체험할 수 있는 놀이기구 들이 있다. 손을 잡고 온 어른이나 어린이나 모두 심심치 않게 하려는 일본인의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삼성 익스피리언스에는 세계 가전, 휴대폰 시장에서의 새로운 최강자로서 자부심을 드러내는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소니원더가 10대 초반 이하를 타겟으로 한다면 삼성 익스피리언스는 10대 후반 이상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소니 원더나 삼성 익스피리언스 보다는 센트럴파크에 더 끌린다. 사실은 비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지만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기업의 체험관이 센트럴파크에 비해 열등한 것은 첫째 변화가 없어서 싫증나기 때문이다. 센트럴파크의 자연은 계절 따라 다른 모습이건만 두 체험관의 전시품에서 이러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리인 것 같다. 둘째, 만남이 없기 때문이다. 센트럴파크에서는 약속이건 조우이건 아는 사람 혹은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만 두 체험관에서는 설사 만남이 있다고 해도 너무나 상업적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본질적인 것은 정보통신의 물성 때문이다. 센트럴파크는 부자에게나 가난한 걸인에게나 모두 가슴을 열고 있지만 두 체험관에서는 이러한 푸근함을 느끼지 못한다. 보편서비스를 추구하고 복지정보통신, 인간의 얼굴을 한 정보사회를 외치고 있지만 정보통신의 현주소는 아직 너무나도 물질적인 것 같다. 아마도 두 체험관이 기업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정보화된 동아시아가 정신적으로도 고도의 풍요를 누리고 이를 전 세계에 나누어주는 센트럴파크가 될 수 있도록 특히 공공부문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 약력 *--------------------------
+ 서울대 언어학 학사
+ 고려대 법학 석사
+ 영국 옥스퍼드대 법학 박사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현재 NYU 방문연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