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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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방융합에 대한 짧은 단상

  • 작성자염용섭  연구위원
  • 소속통신방송연구실
  • 등록일 2006.02.14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글을 접하였다. 기자인 프리드먼이 취재하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느낀 생각을 정리한 책인데, 여기에서 그는 렉서스로 대표되는 세계화 추세와 올리브나무로 대표되는 기존의 질서나 가치 또는 지역을 지키는 반세계화 운동이 대립하는 사례를 들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는 세계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상당히 클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서 세계화와 지역가치의 보전 사이에 조화가 불가피함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읽으면서 갑자기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떠오른 것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렉서스는 자동차이고, 자동차는 세계 누구나 사용하는 기계라는 점에서 세계화를 논하는 대상이 될 수 있듯이, 통신서비스 역시 역사나 문화와 무관하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전자기기라는 점에서 세계화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초에 통신서비스를 독점사업으로 운영하던 기존의 체제에서 탈피하여 세계화 추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이후 우리의 통신시장 발전은 그야말로 비약적이었다. 필자가 연구소에 입사한 후 이러한 발전의 시발점에서부터 현재까지 정책을 연구하면서 가진 보람은 바로 이렇게 발전한 현재의 우리나라 통신산업이다. 90년대 초반의 시장도입 당시에도 개방에 대한 많은 반발이나 우려가 있었다. 독점에 의해 만들어진 지대를 외국인에게 고스란히 빼앗겨서는 안된다거나, 아직 역량이 부족한 국내 IT 생산능력을 고려하여 장비시장을 반드시 지켜야한다며 개방을 거부하고, 자급자족적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 반대하는 측의 논리였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모두 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독점에 의해 만들어진 지대가 존재하는 점이나, 역량이 부족한 국내 IT산업 현실은 모두 맞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방향이 폐쇄적인 시장구조라는 점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통신시장은 세계화와 개방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추세를 제대로 예견하면서, 이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매우 유익하다는 일반적 상식을 받아들인 결과는 성공적인 것이었다. 이제는 초고속에서, 이동통신에서, 디지털 이동방송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서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 방송을 둘러보자. 최근 방송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방송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상파방송사 추가 진입시에도 그랬고, 종합유선방송사업 진입때도 그랬고, 위성방송사업 진입도 그랬다. 그리고 DMB마저 단 한 차례의 예외 없이 새로운 방송사업자 진입마다 논란이 있었다. 물론 기존 사업 분야에 새로운 사업자가 진입함에 있어서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그 분야에 규제가 많다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관련 논쟁의 공통점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동일하게도 방송의 공익성 차원에서 평가할 때 새로운 서비스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논란이었다. 다시 말하면 논란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방향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송서비스는 국민에게 제공되었고, 그러한 서비스 제공에 의해 방송의 공익성이 우려할 만큼 저해되었다는 평가는 보지 못했다. 새로운 서비스의 도입이 매우 늦어졌고, 외국의 기술을 따라가기 바쁘다는 대가를 치루었지만.
과거를 되새겨보면 새로운 방송서비스가 기술발전에 의해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그것이 우여곡절 끝에 국민에게 제공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새로운 방송서비스에 대하여 방송 내용의 공익성이나 지역문화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전략은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이 글 맨 앞에서 언급했던 프리드먼의 저서에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조화시킨 사례가 우리의 논의에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제시한 사례는 지역개발에 관한 해결방안이었다. 한 지역을 개발하여 피폐된 지역경제를 살려서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자는 주장과 자연보호가 중요하므로 개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부딪혔을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적절한 수준에서 지역개발을 허용하되 자연을 배려하는 개발을 추진하고 개발의 이익 중 일부를 회수하여 지속적인 자연보호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양자가 합의하는 것이었다.

통신과 방송에서의 논의에 이 사례를 대입하면 새로운 기술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불가피한 추세라면 이러한 진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로 인하여 염려되는 방송 내용에서의 공익성이나 지역문화 창달을 유지하는 보완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조화로운 지혜일 것이다. 여기서 개방과 공익의 조화라 함은 새로움을 최대한 거부하다가 이것이 불가능한 시기가 오면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힘의 논리이지 합의가 아닌 것이다. 통신분야가 개방의 길로 들어설 때 제기되었던 독점이윤의 해외유출이나 빈약한 국내 IT 경쟁력 문제에 대하여 우리나라가 폐쇄하는 전략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개방으로 나아가기로 방향을 설정하되 국내 사업자에게 먼저 개방하여 독점이윤을 해소하거나 서비스 산업과 기기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가지도록 간접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등 문제를 보완하는 전략을 병행해서 갈등을 해소하도록 한 정책도 조화를 이룬 해결책이었다고 생각된다. 통신의 경쟁을 거부하다가 불가능해지면 졸지에 개방해버리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올리브나무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쉽사리 올리브나무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모든 올리브나무를 완벽하게 지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나무 주위를 완전히 폐쇄하는 우를 범하기 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새로운 자연환경 개발에 참여하고 여기에서 적합한 올리브나무 분포와 보존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효과적이듯, 방송 내용의 공익성 확보도 모든 방송이나 그와 유사한 콘텐츠들을 완벽하게 지키려고 하기 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도록 밑그림을 다시 그리고 그 위에서 적절한 공익성 확보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인간이 사는 모든 곳을 원시림 같은 태고의 자연환경으로 보전하기가 불가능하다면 개발론자는 자연환경을 생각하고, 환경론자는 개발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듯, 이러한 조화의 지혜는 통신과 방송의 요즘 변화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풍요로운 개발이 이루어진 아늑한 서구의 어느 마을처럼 통신과 방송이 자유롭게 성장하는 환경 속에서 나름의 공익성이 유지되는 그런 미래가 오기를 기원하는 것이 꿈이 아니기를 희망한다.

--* 약력 *--------------------------

+ 서울대 무역학 학사
+ 프랑스 파리 1대학 경제학 석사
+ 프랑스 파리 1대학 경제학 박사
+ 2003.06 ~ 2004.01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통신방송연구실장
+ 현) 위치기반서비스(LBS)산업협의회 운영위원
+ 현) NGcN 포럼 법제도분과 위원장
+ 현) 통신위원회 통신요금심의위원회 위원
+ 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부서대외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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