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첫날과 설날 연휴도 지나가고 개구리가 하품한다는 입춘마저 지나 2006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오래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2006년에는 이것을 꼭 해야지!”, “올해에는 이것만은 꾸준히 해내고 말거야!”라는 다짐을 하는 것도 새삼스러워서 올해는 별다른 새해 마음가짐을 정해 두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내심 새해에 대한 고민은 있었는지 계속해서 마음에 걸려 있는 화두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올해 지금, 그리고 내 나이에 걸맞는 삶의 모습을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다.
요즘 세상에 젊게 살아야 무병장수한다는 사람, 청춘은 육십부터라고 외치고, 동안(童顔)을 가꾸기 위해 외모에 유달리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많은데, 나이보다 성숙하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하다. 하기사 감당하기 힘들만큼 크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부딪히며 살아가려면 흰 머리 생길 일 뿐인데 젊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할 만도 하다. 그래도 내게 드는 생각은 이만큼 성숙하기 위해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꿈을 꾸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다.
질문과 고민을 놓고 생각하다 어느새 깨닫게 된 것은 비록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이십대 중반을 넘어 가면서, 미래의 꿈보다 과거의 흔적들을 먼저 보기 시작했고, 입에 올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삶의 흔적이 길어지고 생채기가 많아질수록 이들이 내 삶의 일상적 모습과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은 정치학, 역사학을 아울러 경제학 등 사회과학에 존재하는 개념으로서, 행위의 경로가 결정되고 나면 관성에 의해 경로를 바꾸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국가의 성장발전 과정을 설명할 때 주로 논의된다.
그런데 우리네 삶도 국가의 성장 과정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삶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찬찬히 되새기는데, 어느새 경로의존적인 삶의 궤적을 찾고 말았을 때, 이것은 관성적으로 살아오는 습관적인 일상에 대한 고백이자 자아비판이 된다. 경험한 사건, 성공의 기억, 여기저기 틈새에 생겨나는 마음의 생채기들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다음 할 일, 다음 단계를 결정해버리고 마는 경로의존적인 습관과 성향에서 우리도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특히나, 직장인이라면 한번 익숙해진 근무환경에 같은 사람들과 비슷한 업무를 통해 새로 맡게 되는 일과에서도 경로의존적인 처리와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쉬운 법!
이렇게 경로의존적인 삶을 깨닫고, 지금 나에게 걸맞는 삶의 모습을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자신의 틀을 깨는 것”이라는 답이다. 젊은이가 미래를 꿈꾸며 습관들을 꾸준히 바꾸어 가면, 조금씩 삶의 경로도 전환될 것이고, 고민을 하고 머리를 굴리다 어느 것도 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쳐 버리는 성향도 극복하여, 과감히 결단하고 행동함을 오히려 내 삶의 습관적 경로로 삼을 수 있을 법도 하다.
“사랑을 놓치다”라는 영화는 그 제목에서부터 대강의 스토리를 짐작이 가게 하지만, 역시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서로 마음을 표현할 순간을 망설이다 습관적으로 여러 기회를 놓치고 만다. 시간은 또 흐른다. 그러나 주인공인 그들은 영화적 우연이 보상해주는 기회를 잡게 되고 해피한 엔딩을 맞는다. 반면, 우리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삶을 꾸리고 있으며, 놓쳐 버린 사랑을 보상해주거나 삶을 바꾸어버리는 기쁜 우연 같은 것은 거의 찾아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다시 놓쳐 버리곤 한다.
비단 사랑뿐이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런 셈이다. 지금이라도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취미생활을 만들어 보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연구영역을 개척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것도 이 순간을 놓쳐 버리면 영영 나와는 멀어지는 일이 될지 모른다. 공부해왔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잘 적응해왔던 것들의 테두리 안에 묶여 있는 경로의존적인 습관에 굴복하지 말고 바꾸어야 할 모습을 고민해보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고민을 해야 할 순간이고, 또한 고민을 하다 재고 머리를 굴려 다시 이도 저도 못하는 일상 속에 갇히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 자신의 틀을 깨고 경로의존성을 깨어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걸맞는 삶의 태도는 바로 이러한 모습이라고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