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27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기획 하에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메가트렌드 코리아』라는 제목의 이 책은 얼핏 보아 최근에 잇달아 쏟아져 나온 다른 미래전망서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2002년 11월부터 과제의 씨앗이 뿌려지고, 싹이 트고, 열매가 맺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필자에게는 그야말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지난 3여 년간 과제를 수행하면서 느꼈던 소감과 몇 가지 뒷이야기를 전해보려 한다.
미래란 누구나 궁금해 하고 또 알 수만 있다면 엄청난 이득을 남길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보다도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오늘의 행동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픈 욕구 때문일 것이다. 과거를 더듬어보고자 하는 욕구가 현재의 결정이 지금까지의 경험과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면, 미래연구 역시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굳이 다르다면 역사연구가 지나간 시간에서 오늘과 유사한 상황을 찾는데 비해, 미래연구는 다가올 시간이 오늘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미래학자 뿐만 아니라, 영화감독, 기업인, 소설가, 점술가 등은 나름의 방식대로 미래를 예측한다. 미래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고 또 그 예측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예측의 정확성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예측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점술가의 예측이 아무리 정확하더라도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이유는 예측의 방법론이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블랙박스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이 다른 부류의 예측가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이점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2002년 전대미문의 놀라운 변화를 접하게 된다. 효순․미순 자매의 죽음을 애도하는 촛불시위, 한일 월드컵에서 나타난 붉은 악마의 대규모 거리응원, 그리고 연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노사모의 위력 등이 그것이다. 얼핏 보기에 전혀 다른 배경과 의미를 지닌 듯한 이 세 가지 사건의 막후에 인터넷과 휴대폰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초고속 인터넷이 가정에 도입된 지 만 3년이 지나고 이동전화가 유선전화를 추월하고 통신의 안방을 차지한 2002년 말,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세계화가 IT와 하나 되는 ‘디지털 혁명’의 문턱에 막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한국사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데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였다. 산업사회에 토대를 둔 기존의 학문적 개념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익명성에 기반을 둔 다중정체성 현상, 인터넷 게임 중독현상, 그리고 지나친 자기 노출의 행태 등이 개인적 차원의 예에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인터넷 선거, 인터넷 신문, 사이버 공동체, 인터넷 옥션, 프로슈머와 같이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메가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이 나오게 된 모태가 되는 “IT기반 미래국가 발전전략 연구”는 바로 이렇듯 IT로 인해 한국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변화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변화가 5년 10년 계속되었을 때 나타나게 될 미래의 사회현상과 정책적 도전에 대한 불안과 우려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온이나 바람, 눈으로 볼 수 있는 파도나 강우의 변화 뒤에는 수백년에 걸쳐 전개되어온 기단이나 심해류의 변화가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목도하는 인터넷경제와 디지털정치의 이면에는 경제활동과 정치활동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개념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IT기반 미래국가 발전전략 연구”를 기획하던 3여 년 전 정보통신부의 고위간부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제도와 규범 중 예상외로 처음에는 매우 용인하기 힘들었던 것이 많습니다. 예컨대, 자동차 사고 시 과실상계의 관행은 처음 차가 나왔을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었고 차를 운전하는 기사는 사회의 하층이었으므로, 모든 인사사고는 당연 운전자의 과실이었습니다. 자가운전이 대중화되고 사회의 주요 의사결정을 주관하는 의견지도층이 자가운전을 함에 따라 과실상계의 관행이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렇게 깊숙이 자리 잡게 될지 짐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과연 인터넷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앞으로 또 10년 후의 생활양식은 어떻게 될까? 이러한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의 기본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근본적인 개념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표피에 드러난 현상에만 치중할 경우, 자칫 심층에 흐르는 큰 변화를 놓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인문․사회 중심의 학제간, 중장기 연구프로젝트의 수행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학제간 연구가 필요한 것은 IT로 인한 사회변화는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이므로 특정한 학문영역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구를 수행하면서 발견한 것 중 재미있었던 것은 선진국에서도 매우 유사한 연구가 수행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PICT(Programme on the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1985~1995)와 일본의 ‘정보사회와 인간(1991~1995)’이 대표적인 것인데, 아쉽게도 두 프로젝트는 모두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의 연구였다. 비교적 최근에 유럽연합 차원에서 정보통신이 유럽인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e-living(2001~2004)도 유사한 목적을 지향하는 연구라 하겠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래를 안다는 것은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의미한다. 미래연구를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복점정도로 생각한다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것이다. 이제 국가의 미래와 비전을 지도자의 선견이나 직관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발명이 더 이상 에디슨과 같은 개인에 의존하지 않듯이 말이다. 새로운 연구개발을 위한 아이디어가 발굴되고 관리되고 시제품화되는 창의적인 과학기술혁신체계가 중요하듯이, 국가의 10년 후 100년 후를 내다보는 미래지향적 연구들이 체계적으로 기획․추진되고, 그 결과가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국가미래연구 혁신체계의 구축이 시급한 시점이다.
--* 약력 *--------------------------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지리학과 문학사 전공 : (경제지리학)
+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학과 문학석사 전공 : (경제지리학)
+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학과 박사학위 전공 : (경제지리학)
+ 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디지털미래연구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