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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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로의 회귀

  • 작성자김민철  책임연구원
  • 소속공정경쟁연구실
  • 등록일 2006.03.07

많은 사람들이 아날로그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며 아날로그는 구식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음악감상을 즐기는 편인데 이러한 시대적 대세에 역행이라도 하듯이 지난 해 말경부터 다시 턴테이블을 구입하고 LP음반을 재구매하여 아날로그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물론 필자도 아날로그의 시대가 끝났다고 판단했던 적이 있었다. 90년대 중반 경으로 기억되는데 보유하고 있던 LP음반들을 모두 들고나가 팔아치운 적이 있었다. 당시에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경험을 하게 되는데 중고매입상이 원래 구입가가 만오천 원 정도인 수입음반을 중고음반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이만 원 가량을 쳐 준 것이었다. 당시에는 뭔가 착오가 있으려니 했는데, 놀랍게도 그 음반은 현재 가격을 정하기도 어려우며 최소한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시장을 바라봄에 있어서 중고매입상의 눈은 상당히 정확했던 것이다. 디지털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중고 LP음반시장이 매물의 홍수 속에 놓이게 되었으나 최근 2~3년간 LP음반 중고시장이 무척이나 활발한데다가 놀랍게도 LP음반을 새로 찍어내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좀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무엇이 이렇게 아날로그 음반시장의 부활을 가져 왔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음질에 대한 것이겠지만 이에 대한 논란이 워낙 심한데다가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논외로 하면 아날로그 재생의 경우 소비자들이 직접개입해서 적극적으로 음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장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직접 바늘을 올려놓고 다양한 조정을 가하면서 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묘미가 있으며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능동적인 느낌을 가지게 된다. 반면에 CD음반의 재생을 위해서 소비자들이 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소비자들은 여기서 왠지 모르는 박탈감이나 무력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점이 아날로그의 부활에 일조하는 것 같다. 최신형의 디지털 카메라에도 불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수동기능들이 추가되고 있으며 최근에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을 의미하는 디지로그(Digilog)라는 표현이 유행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가 다시 침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CD이후 차세대 디지털 매체를 둘러싼 업체들간의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인해서 장기간 후속매체가 단일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차세대 포맷에 관해서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상당기간 CD후속의 고해상도 매체로 소니와 필립스 진영의 SACD(Super Audio Compact Disk)와 파나소닉과 파이오니어 진영의 DVD-Audio가 포맷전쟁을 벌임으로써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두 매체 모두 음질면에서 CD에 비해 상당히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구입한 플레이어와 음반의 가치에 의문을 지닐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에 의해서 모두 외면되고 있는 것이다. 향후 디지털 음반 및 비디오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 차세대 DVD 매체 역시도 HD-DVD와 블루레이(Blu-ray)진영의 표준화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앞으로 상당기간 험난한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통신시장에서도 급격한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다양한 신규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었고 앞으로의 발전방향 역시도 디지털기술의 향후 발전방향과 그 맥락을 같이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날로그 신호인 음성이 디지털화되고 인터넷망을 통해서 전송되는 VoIP같은 서비스 역시도 디지털기술이 없이는 불가능한 서비스이다.
그런데 이러한 디지털화의 추세 속에서 서비스 이용자들은 왠지 모르게 소외되고 피동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아날로그 시절의 전화통화의 경우 이용자자신이 자신이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 시간만을 고려하면 되었으며 시간의 이용은 전적으로 이용자의 통제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이용시간의 개념은 약화되고 데이터 이용량이라는 또 다른 척도가 이용되며 여기에 대해 소비자들은 적절한 감각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어느 정도 경험을 통해서 데이터 이용량에 대한 느낌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 커다란 흐름을 소비자가 장기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항상 피동적으로 적응하는 방법 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이를테면 화상통화가 곧 광범위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소비자들이 디지털화된 화면의 용량을 파악하거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용량의 향후 추이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디지털화된 통신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요인은 표준화의 이슈와 지나친 다매체화의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소비자들은 통신서비스를 이용하고 컨텐츠를 제공받음에 있어서 그 결과물에만 관심이 있지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제공되는 지에 대해서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표준화의 이슈는 아날로그 시대에도 있어왔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훨씬 문제를 일으킬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현재 수많은 표준화 이슈가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의 경우 국가간 혹은 권역간 주도권싸움의 양상마저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일한 컨텐츠가 TV, 이동전화 단말기, 컴퓨터 등 다양한 매체로 전달되는 다매체화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 중첩적이어서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행위자체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며 기술의 발전으로 자신이 선택한 매체가 사장되는 경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디지털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고 다양한 서비스들과 매체들이 제공되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이지만 이러한 와중에 소비자들이 배제되고 피동적으로 되며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날로그 LP음반이 다시 살아나는 것에서 느낄 수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을 능동적인 주체로 만들 것인가 그리고 소비자들이 확신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도록 표준화에 대한 사전적 합의를 이루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할 시점이다.

--* 약력 *--------------------------

+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 YALE UNIV 경제학 석사,박사
+ 現)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공정경쟁연구실 책임연구원

  • 부서대외협력팀
  • 담당자신보람
  • 연락처043-531-4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