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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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한다는 것

  • 작성자최항섭  연구위원
  • 소속미래전략연구실
  • 등록일 2006.07.15

최근 들어 여러 공공기관, 기업들을 중심으로 '미래'를 내다보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과거의 청산에만 얽매이지 말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탓도 있겠거니와 워낙 사회의 변화속도가 빠르다 보니 최소한 가까운 미래라도 내다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신통한 점쟁이들은 손님들의 미래를 내다본다고도 하지만,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일까?

● 미래학의 목적

서구에서는 20세기 후반부터 미래학이라는 학문영역이 발달하고 있다. 정치학, 사회학, 철학, 역사학자들 중 미래를 내다보는 것에 관심이 많은 학자들이 발전시킨 학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 3의 물결'의 저자인 앨빈 토플러, '메가트렌드'의 저자인 존 나이스빗 등이 모두 대표적인 미래학자들이다. 그런데 이 미래학자들조차 자신들의 저서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미래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에 대해 미래학자들은 '미래학은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인류의 생존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칠 몇 가지 가능성들을 도출하고, 각 가능성들을 대중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하며, 각 가능성 하에서 국가와 기업이 미리 준비해놓아야 할 대처방안들은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는다'고 설명한다. 필자가 참석해왔던 그 어떤 국제학회보다 참가자들의 열정과 진지함이 돋보였던 작년도 시카고 세계미래학회에서도 이러한 미래학의 본질적 목적은 누누이 강조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미래연구는 미래학의 본질적 성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명칭만 '미래'를 붙였을 뿐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존에 많이 해오던 '중장기전망연구'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기존 연구와 지금 하고 있는 미래연구가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오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생산된 '미래연구' 보고서 하나를 평소 친분이 있던 유럽의 미래학자 한 명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의 코멘트는 짧고 명료했다. '이것은 미래연구가 전혀 아니다. 단순한 비전작업일 뿐이다.'

● 공허한 '미래연구'만 유행

돌이켜보면 1997년 IMF 환란사태를 그보다 10년 전 즈음에 누군가가 한국에서 향후 벌어질 수 있는 위험한 가능성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정부와 국민 모두가 그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어떠하였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사태가 벌어지고 난 후 허둥지둥 대처하여 피해가 그렇게 장기화되는 상황은 안 벌어졌을지도 모르며, 애초에 그런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변하는 남북관계, 심해져만 가는 대외무역갈등,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양극화, 본격적으로 이슈화될 농어촌 혼혈아동들, 진화의 끝이 보이지 않는 IT기술과 드러나기 시작한 역기능의 문제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미래를 지극히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단지 '미래' 자만 붙인 홍보성 연구가 아닌, 제대로 된, 원래의 본질적 목적에 충실한 미래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 * 약 력 * -----------------------------------------------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 프랑스 파리5대학 사회학부 석사
+ 프랑스 파리 5대학 사회학부 박사
+ 디지털미래연구실 연구책임자 

 * 본 칼럼은 한국일보 '삶과 문화'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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