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적 문화권력 붕괴 우리에겐 새로운 기회
할리우드에서 아무도 재능을 알아주지 않아 자신의 집에서 네티즌을 향해 연기를 펼쳤던 세 명의 친구들. 이들의 자작 영상물은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며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들은 결국 전문 연기자가 됐고 방송에 출연했다. 론리아일랜드(thelonelyisland.com)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예전이라면 주류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인터넷 덕택에 성공한 이야기는 닷컴 열풍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갑을 바라볼 때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한 연예인이 생애 최초의 팬미팅을 가져 화제가 됐다. 다수가 아닌 소수의 인정 역시 네트워크를 통해 모이면 외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지금까지 배타적 문화권력을 향유해왔던 이들에게 IT는 어떤 의미에서 위협적일 수 있다.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경제적·정치적으로 우위에 선다는 것 외에도 소통의 수단과 방식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터넷의 보급으로 하나의 현상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들이 경쟁하게 되었으며, 주류의 인정이 아닌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의 인정을 추구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들은 지역사회에서는 소수이지만 전국적·지구적으로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한편 나에게서 멀리 있고, 내게 오게 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정보·지식·문화는 이제 네트워크 위에 있고, 내가 찾아낼 능력만 있다면 내 소유나 다름없게 되었다.
크리스 앤더슨은 저서 ‘롱테일’(The Long Tail)에서 20%의 히트상품에 주력하는 희소성의 시대가 가고 오프라인에서 잊혀졌던 틈새 상품들이 제 주인을 찾아가는 풍요의 시대가 오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변화의 근저에는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비용이 극적으로 줄어들게 한 검색기술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수요 자체가 획일적인 사회에서 경쟁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문화 경쟁력을 논하기 전에 문화의 다양성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급속한 산업화 단계에서 한국 사회는 강력한 중심지향성을 갖고 발전해왔다. 정보화는 우리 사회를 보다 다양한 문화에 대해 포용력을 가진 사회로 만들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 많은 재기발랄함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이들이 왜 오프라인에서 좀 더 많은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열기에는 수직적 소통구조를 뚫고 나오고 싶었던 이들의 욕망이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품과 콘텐츠를 연결하고 자유롭게 검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80%에 해당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연결해 창의 경제의 밑거름으로 삼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인터넷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마이너리티, 이들에게서 내일의 희망을 읽는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 본 칼럼은 전자신문 5월 7일(월, 4면) [가자 IT코리아 2.0]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