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가 걸어온 길은 참으로 지난했다. 다행스럽게도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발족되면서 실마리를 찾았다. 지난 4월 융추위가 의견을 정리해 국회에 송부, 국회 방통특위가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희생을 치렀다. 무엇보다 우리의 우수한 인터넷망이 다시 한 번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나아가 국민은 한층 발전된 서비스를 향유하지 못한 채,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너무 많이 기다렸다. 기회비용이라는 지출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논의는 충분히 했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종합적으로 제시됐다. 이제 국회의 합리적 결정을 통해 논란을 매듭 지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통신.방송 네트워크의 진화, 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자들의 경쟁, 무엇보다 국민들을 위한 양질의 앞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을 통해 ‘되새기고 싶은 기억'과 ‘잊고 싶은 경험'을 모두 갖고 있다. 아날로그 이동전화를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기술을 상용화했다. 그 과정에서 국내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높였다. 성과는 세계 5대 단말기 생산자 중 국내기업이 2개나 포함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견이 있었다. 그러나 신속한 의사결정과 이해당사자들의 협조에 힘입어 시장의 불확실성을 조기에 제거했다. 결과는 산업 성장과 국민 혜택 증진으로 입증됐다.
좋은 경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92년 위성방송 기술을 개발했다. 이후 위성 발사와 동시에 위성방송도 제공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자 선정방식과 기존 방송 서비스와의 역학관계 설정 등 규제 전반에 대한 논의가 길어진 탓에 위성방송 서비스가 늦어졌다. 특히 통신사업자의 방송사업 진출에 대한 논쟁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위성방송 서비스의 상용화는 기술개발 후 10년이 지난 2002년에야 허용됐다. 그나마 지상파 재전송이 허용되지 못한 채 서비스가 시작된 탓에 정상적 모습에 가까운 서비스는 상용화 이후 다시 3년을 기다려야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발전된 디지털 방송 서비스를 향유할 수 없었고, 기술개발에 참여한 수많은 기업이 영업다운 영업도 못하고 문을 닫아야만 했다. 현재 위성방송 가입자는 200만가구에 머무른 채 사업자의 누적적자는 5000억원을 넘어섰다. 유료방송시장의 경쟁 활성화는커녕 경영 지속 여부마저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가정이지만, 위성방송기술을 개발하자마자 서비스를 실시했다면 또 다른 불멸의 세계 기록을 수립했을 것이다. CDMA의 경우처럼 위성중계기.셋톱박스.안테나 등도 세계 시장을 석권했을 것이다.
돌아보자.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면서 어렵게 만든 규제제도를 통해 본래 의도했던 효과를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의문이다. 위성방송매체의 독점을 우려해 만든 규제라면 위성방송사업자가 많아질수록 매체의 독점력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위성방송 규제는 다수 사업자의 진출을 유인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경제.국민.기업들이 요구하는 IPTV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염려된다. 최근 우리나라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IPTV 관련 기술을 한꺼번에 39건이나 국제표준으로 반영했다. 총 770여건의 표준 중 약 18%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우수한 기반시설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도 나래를 펼 네트워크와 서비스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효과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국내시장이 존재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이미 CDMA에서 확인했다.
언제까지 이견과 갈등 속에서 논의만 할 것인가.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답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확인했다. 그렇다고 정책결정을 미루는 것은 다가온 좋은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지점에서 공익성과 효율성을 조화시킬 것인지를 신속하게 결정해야 한다. 기나긴 논란을 매듭 지어야 한다. 위성방송의 전철에 따른 잊고 싶은 기억보다는 CDMA의 길 속에서 얻은 되새기고 싶은 기억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 본 칼럼은 헤럴드경제 5월 29일(화, 10면) 헤럴드포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