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한선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신문법 개정안 제16조에 따르면, 문화부장관은 각종 미디어(신문, 인터넷신문, 인터넷뉴스서비스, 텔레비전 방송, 라디오 방송, 이동멀티미디어 방송 등)를 대상으로 ‘여론 집중도’를 조사하여 공표할 수 있다. 법안의 주요 취지를 살펴볼 때, ‘여론 집중도’ 조사는 아마도 미디어 소유규제, 특히 미디어간의 교차소유(Cross-Ownership)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기초적인 데이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여론 집중도’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과연 이 단어의 사용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먼저, 여론(Public Opinion)이란 무엇인가. 일상적인 의미에서 여론은 ‘어떤 사안에 대해 사회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의견’이다. (물론, 여론이라는 단어 안에 이미 ‘다수’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남북통일에 대한 찬반 의견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성인 중 90%가 찬성하고 10%가 반대했다면, 남북통일에 대한 찬성여론은 90%, 반대여론은 10%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남북통일에 대한 우리나라 성인의 여론이 위의 예처럼 찬성에 매우 집중되어 있다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모든 국민이 특정 사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여론은 반드시 다양해야만 하는 것인가.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한다면 내 대답은 당연히 ‘NO'이다. 여론이 반드시 다양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여론은 매우 가변적인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오늘 집중되었다 해도 내일은 분산될 수 있으며, 분산이 항상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자전거 도로를 더 많이 만들자는 의견에 더 많은 사람들이 ‘집중’해 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여론 다양성’은 무엇인가. ‘여론 다양성’이야말로 민주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여론이 다양할 필요가 없다면, ‘여론 다양성’이 보장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이제 결론을 이야기하자. ‘여론 다양성’ 자체는 궁극의 목표가 아니다. ‘여론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은, 다양한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해외 주요 국가들이 예외 없이 미디어 분야의 소유 규제를 실시하는 이유는, 여론의 집중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여론이 형성되는 물적 토대가 미디어에 있음을 간파하고, 다양한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 물적 조건을 최대한(또는 최소한)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 사회 내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정보원(Source)이 얼마나 다양한가 등을 측정하고, ‘여론 집중’이라는 용어 대신 ‘미디어 집중’ (Media Concent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와 여론 형성의 직접적인 상관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제기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여론 집중도’라는 용어 사용은 부적절하며, ‘여론 집중도’를 측정한다는 발상 자체도 이치에 맞지 않다.
주지하듯이, ‘미디어 집중도’를 측정하자는 원칙을 정해 놓았다 하더라도, 앞으로 가야할 길은 매우 험난하다. 시장 획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개별시장 vs 전체시장, 전국시장 vs 각 지역시장, 전체서비스시장 vs 시사정보시장), 집중도 측정은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전체 플레이어의 수 vs 공동소유 플레이어의 수, 잠재적 도달율 vs 실질적 도달율), 어느 정도 집중되어야 ‘집중’되었다고 할 것인지(CR3 기준 75%, HHI 1800 이상 등) 등의 모든 이슈가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핫 이슈들이다.
여하튼 법안이 통과된다면, 이 조사는 긍정적인 의미에서건, 부정적인 의미에서건, 우리나라 미디어 소유 규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초의 실증적 데이터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 단추를 잘 꿰매야 한다. 신문법 개정안 제16조의 ‘여론 집중도’는 ‘미디어 집중도’라는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