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돈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는 경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 중의 하나이다. 크게는 국가생산체제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누는 것에서부터 작게는 집안 살림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까지 포괄하는 질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자본흐름과 관련하여 작지 않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데, 바로 미국의 킥스타터(Kickstarter)로 대변되는 크라우드펀딩이다.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은 이름 그대로 대중이 돈을 대는 행위를 말한다. 몇몇 소수의 자본가가 아니라 일반대중이 스스로 좋은 투자처를 찾아내어 소액을 투자하는 개념이다. 돈을 필요로 하는 자(자금수요자)가 자신이 왜 돈을 필요로 하는지, 자신에게 투자하면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누군가(자금공여자)가 소액의 자금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제안자는 그 돈을 모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
![[그림]크라우드펀딩 흐름도 [그림]크라우드펀딩 흐름도](../../../img/bo/notice/img_2014042201.gif)
크라우드펀딩은 킥스타터(kickstarter.com), 인디고고(indiegogo.com), 크라우드큐브(crowdcube.com) 등 미국과 유럽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의 성공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2012년 4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중소기업, 창업기업의 지분까지 크라우드펀딩으로 공모할 수 있게 하는 JOBS Act에 서명함으로써 전 세계 자본시장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올해 JOBS Act에 의한 지분형 크라우드펀딩이 미국에서 실제로 실시될 예정인데, 이에 따라 성장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펀딩플랫폼인 펀더블(fundable.com)은 올해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모금액의 예상치를 100억 달러로 제시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벤처캐피탈이 투자하는 금액이 연간 1.5조 내외, 미국이 연간 200억 달러 남짓인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수치이다.1)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크라우드펀딩은, 하지만 그 개념이 전혀 새롭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단 몇 일 만에 천만 달러 가까이를 모금한 페블(Pebble)의 성공사례나 매년 100% 가까이 성장하고 있는 시장규모 덕분에 크라우드펀딩은 선견지명을 가진 누군가가 새롭게 제시한 놀라운 발명품쯤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으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경제활동이다. ARS 전화 한 통화에 자선기금 2,000원씩 모은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K-POP 가수의 공연을 유치하기 위해 팬클럽에서 공연티켓을 선구매하는 것 등이 기본적으로 모두 크라우드펀딩의 일종이다. 지인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걷고, 상가집에서 조의금을 내는 것도 그렇다. 자금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곳에 자발적으로 소액의 자금을 대는 것, 이미 오랫동안 우리 주위에서 있어왔고 누구나 참여하는 활동 중에 하나이다.
그렇다면, 크라우드펀딩은 이미 알고 있었던 ‘십시일반 돈모으기’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인가? 전세계적인 성장세는 어떤 의미를 가지며, 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주목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이 가진 본질적인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만인이 만인을 대상으로 하는 자금시장의 형태를 띤다. 즉, 중간에 플랫폼이라는 공간이 존재하지만 이는 시장(marketplace)의 역할을 할 뿐 기본적으로 다대다의 방식으로 자본을 거래 혹은 유통하게 된다. 브로커나 전문투자가가 중간에 개입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금수요자가 될 수 있고 다시 자금공여자도 될 수 있으며, 수요와 공급이 직접거래로 일어난다. 바로 이 때문에 크라우드펀딩은 기존의 자본공급방식에 변화를 유도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2014년 현재의 사회적, 기술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그 잠재적인 변화의 정도가 무시 못 할 수준이 될 것이다.
다시 처음의 “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하는 이슈로 돌아가보자. 지난 수백 년간 자본시장은 투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대상으로 성장해왔다. 집, 건물, 기계 등의 유형자산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술, 아이디어에도 투자해왔고, 실현이 불투명한 미래의 거래에도 투자하며, 이미 투자한 것들을 묶어서 다시 투자상품으로 만드는 등의 테크닉도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그 투자의 상당부분은 투자전문가라는 소수의 그룹이 담당해왔고, 이로 인해 자본을 모으고 투자하고 회수하는 전체 흐름이 자본가, 투자전문가, 기관 등 소수에게 쏠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게 성장해 온 것이 20세기의 세계경제를 움직인 뉴욕, 런던, 도쿄의 금융시장이며, 구글, 페이스북 등 혁신적인 벤처와 창업기업을 키워낸 벤처캐피탈이다. 지금도 금융과 투자의 전문가들이 적절한 곳에 적정한 만큼의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시장 변화는 과연 전통적인 금융전문가들이 적절한 곳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기술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여 1년 전의 기술선도기업이 후발기업에게 추월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ICT 벤처기업의 경우에는 클라우드컴퓨팅, 오픈소스, 3D 프린팅 등의 기술환경 덕택에 소규모의 팀이 낮은 비용으로 민첩성을 앞세워 센세이셔널한 애플리케이션이나 컨텐츠를 공급하는데, 이들에게는 적은 액수의 자금이 수시로 적기에 공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전통적인 전문투자조직들은 전체 펀드의 포트폴리오 관리를 위해 어느 규모 이상의 투자를 Series A, Series B로 이어지는 순차 라운드 형태로 자금을 공급한다. 이러한 장기간의 투자는 벤처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창업자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하며 벤처기업 투자성공의 평가잣대로 활용되는 장점이 있으나, 최근의 민첩함을 최우선시하는 소규모 벤처의 경우에는 적용이 어렵다.
게다가 비공개기업(private company)에 대한 기존의 투자는 기업의 정보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되는 폐쇄성을 보여, 기술, 시장, 인력 등에 대한 평가 역시 소수의 사람들의 안목에 의지한다. 이러한 전통적 투자관행은 창업 빈도가 낮으며 기술의 변화가 느려 해당 영역 전문가의 안목으로 충분히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을 때 유의미한 방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창업에 소요되는 비용이 감소하면서 창업기업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업의 대상 역시 일부 지역, 계층 등 특화된 소비자층을 겨냥하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 명의 전문가만으로 순식간에 어느 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우수하며, 어느 창업기업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가 누구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전문가도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못하면서, 소수의 금융전문가에게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기대하던 시대가 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인가? 하나의 대안은 창업자들의 무한경쟁과 빠른 성장을 유도하는 엑셀러레이터, 즉 창업보육의 멘토형 전문가들이다. 그리고 또다른 대안은 시장 스스로 우수한 창업자를 골라내고 시장이 가장 원하는 기술과 제품을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자이며 수요자이며 동시에 투자자인 대중들이 바로 시장이며, 이들로 하여금 기술과 사업을 판단하고 자금을 공급하며 그 이익과 손실을 나누어갖는 것이 크라우드펀딩이다. 즉, 크라우드펀딩은 대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를 활용하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이를 통해, 소수에게 독점되어 공급되었던 자본이 좀 더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술이나 벤처에 투자되며, 더 나아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자선사업이나 문화사업 등으로 이동하게 된다. 기존의 은행, 투자기관, 벤처캐피탈의 문을 두드리기 어려웠던 수많은 아이디어 보유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대중의 대중에 대한 대규모 자본의 흐름은 여태껏 흔치 않았던 배분방식이다. 오랫동안 은행, 증권시장 등 중개기관을 통한 중앙집권적 방식을 통해 자금이 이동해왔기 때문이다. 대중에서 대중으로의 자금 이동은 기술, 경제, 사회적 환경 변화에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반응한다는 특징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독특한 아이디어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존재하며, 이들의 판단이 시장성에 부합한다면 그 아이디어는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또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자본이 특정 지역, 산업, 기업에 집중되지 않고 다방면으로 분산성을 띄게 되며, 대중이 가진 문화적, 직업적, 다양성이 반영된다.2) 지리적, 인구통계학적으로 집중도가 높았던 자본이 좀 더 분산되고 지금까지 소외받았던 영역에도 자금 공급의 손길이 이어질 수 있다. 전통적인 자본시장체제가 아직 발전하지 못한 아프리카 등의 저개발국가에도 크라우드펀딩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이다.
크라우드펀딩이 단순한 ‘십시일반 돈모으기’에서 지금과 같이 자본시장의 변화를 일으킬 만한 규모로 실현되는 데까지 최근의 기술환경과 사회문화적 환경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첫째로, 크라우드펀딩은 수많은 자금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할 매개체를 필요로 하는데, 인터넷, 웹2.0, SNS 등의 환경이 이를 가능케 했다. 인터넷 플랫폼 위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더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SNS를 활용하거나 플랫폼이 SNS 방식으로 진화하는 등의 기술적 구조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둘째로, 국민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으며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창업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을 때 크라우드펀딩이 효과적일 수 있다. 세계에서 창업시스템이 가장 잘 갖추어진 미국에서 크라우드펀딩이 촉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낮은 창업비용, 높은 창업가정신, 창업 및 소규모 비즈니스를 위한 지원인프라 등이 필요하며, 고등교육을 받은 대중들의 지혜로운 안목과 아이디어가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보급률, 스마트폰 사용률 등이 전세계적으로 수위권에 들어 앞으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구축하기에 용이한 국가 중 하나이다. 또한, 교육수준이 높고 최근의 창조경제라는 국정 아젠다를 통해 창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크라우드펀딩이 발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크라우드펀딩이 무엇이며, 개인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과 의무가 무엇인지 논의와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대중들의 집합적 지식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보호체계가 필요한데, 이 역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크라우드펀딩은 시작단계이다. 미국과 유럽처럼 성장할 수 있을지, 킥스타터와 같이 창업환경의 지도를 바꾸는 선도적인 플랫폼이 등장할 수 있을지 점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고 자신이 가진 자산과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우리 시대의 많은 대중들에게 크라우드펀딩은 전혀 새로운 투자의 세계를 열어줄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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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치는 한국벤처캐피탈협회와 미국의 National Venture Capital Association의 Yearbook을 참고
2) Lawton, K. and Marom, D. (2013) The Crowdfunding Revolution: How to Raise Venture Capital using Social Media, McGraw H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