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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평가 이전에 적정 기준이 먼저

  • 작성자전주용  부연구위원
  • 소속통신전파연구실
  • 등록일 2014.05.08

 계약을 설계하는 것은 어렵다. 학술 사이트에서 계약 이론(contract theory)과 관련된 논문을 찾는다면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합리적이고 적절한 계약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 그만큼 매우 어렵고 어떤 특정한 답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합리적 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계약에 이용할 수 있는 적정한 성과 평가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이를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많은 경우는 시장 성과(주식가격 등)를 이용한다. 그런데, 정부 및 공공기관 등과 같이 성과 평가가 시장에 의해 결정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과 평가 기준을 만들게 된다면, 이는 결국 기본적으로 할당(ration)이라고 불리는 경제학자들이 가장 회피하고 싶어 하는 문제와 유사하게 된다.

 필자는 2010년에서 12년까지 3년간 정부 부처 평가 전문위원직을 수행한 적이 있다. 성과 평가를 위해서 정부 각 부처는 엄청난 양의 문서를 작성한다. 문서는 정해진 양식에 맞춰서 편집되고 분야별 목표 및 세부 목표, 수행 방법, 계획 및 성과 평가 지표, 마일스톤 등이 제시된다. 각 전문위원 입장에서 이러한 방대한 문서에 담긴 모든 내용을 단기간 내에 비판적으로 읽고, 이해하고, 평가하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뿐더러 무엇보다도, 피평가 기관이 목표 및 성과 평가 지표를 제시하는 방식에는 계약 이론 관점에서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평가자의 전문성이 높고, 아무리 공정하게 평가하고자 하더라도 이는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일단 문서상으로 목표 달성률은 항상 99% 근처를 유지하는 것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평가자는 정상적인 목표를 세웠지만 무언가 부족한 경우, 아예 중요해 보이는 목표가 빠진 경우 등등을 고려하여 평가해야 되는데, 이는 사실상 평가자가 또 다른 할당 기준을 만들어내는 셈이기 때문에 할당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령, 정부 부처가 한 해 동안 달성해야 하는 중요한 목표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를 수 있다. 큰 목표가 유사하다고 해도 세부 목표가 다를 수도 있으며, 업적 평가 및 달성도 평가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도 역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또한, 해당 분야의 현실을 알면 알게 될수록 이러한 형태의 누락과 부족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냉정해지기도 어렵게 된다.

  만일, 평가자 자신이 직접 관련을 맺거나 전문성을 가진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 대해 평가를 내릴 때는 주어진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상식선’에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경우, 정량화 혹은 객관화라는 명목으로 눈에 보이는 측정기준(metric)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는 보다 눈에 띠는 계량화 가능한 업적 – 의견 수렴 정도를 공청회 횟수로 평가하는 등의 방식 – 위주의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평가가 경영 혹은 정책 운용 자체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러한 식의 성과 평가에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내려진 기관과 개인에 대해 평가가 피평가자 혹은 기관에 의한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며, 이에 근거한 보상 체계를 마련했을 때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시장이 갖는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이러한 성과 평가의 상당 부분을 시장 성과라는 척도(metric)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결과 또한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로 제한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는 여전히 평가의 임의성이 야기하는 문제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전문가들의 풀이 충분히 크고 다양하다면, 조금 더 나은 평가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환경도 제공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보다 나은 평가를 위해 평가자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 “유인 합치”(incentive compatible)하지도 않게 된다. 필자는 3년간의 평가위원 업무를 수행해 오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유인 합치하는 결정은 평가 업무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 및 공공기관의 무사안일 및 방만함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는 매 정권마다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특히 최근 들어서는 더욱 그 소리가 높다. 그러나 성과 평가의 개선이라는 매우 어렵고 여기저기서 비난받기 쉽지만 빛은 나지 않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얘기를 듣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좀처럼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냉소적 시선을 거두기 어려운 이유이다.

PS. 세월호의 비극을 지켜보며 고위 및 정무직 공무원들의 성과 평가의 척도로 자살, 사고 등으로 인한 비자연적 사망률 통계를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관찰 가능하고, 왜곡이 어려우며, 국민 행복이라는 목표와의 연관성도 매우 높다는 점에서 훌륭한 성과 평가 척도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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