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가장 ‘핫’했던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무엇일까? 물론 많은 단어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IT업계에서 일하는 필자는 주저 없이 ‘스마트’라는 단어를 꼽고 싶다.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이른바 ‘스마트 열풍’은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것들을 (본질 보다는 이름의 측면에서) 스마트하게 바꾸어놓았다. 스마트TV, 스마트에어콘, 스마트세탁기 등 가전제품들이 스마트해지더니 이제는 스마트워치, 스마트그리드, 스마트워크, 스마트시티 등 온갖 ‘것(Thing)’들에 스마트라는 이름이 붙고 있다.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별것도 아닌 것들에 ‘스마트’라는 단어가 붙고 있다고 하여 단순히 코웃음치고 넘어가기에는 이 스마트폰이 바꾸어놓은 세상이 생각보다 참 큰 것 같다. 콘텐츠(Content), 플랫폼(Platform), 네트워크(Network), 디바이스(Device)로 이루어진 네 계층을 일컫는 CPDN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들리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ICT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제 ‘생태계’ 전체의 구성이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플랫폼을 중심으로 생태계 구축의 위력을 보여준 애플, 플랫폼 하나만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흔들고 있는 구글 등을 보면 플랫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히 예측컨대 향후 10년간 가장 ‘핫’할 단어 가운데 하나일)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의 시대에는 어떤 계층이 가장 중요할까? 스마트폰 시대에 대한 반면교사일지 모르겠으나 정부도 기업도 사물인터넷의 플랫폼, 특히 OS플랫폼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삼성전자는 인텔, 델, 브로드컴 등과 함께 Open Interconnect Consortium을 구성하여 업계 표준 기술에 기반을 둔 공통 운영체계를 규정하려하고 있으며, LG전자는 퀄컴, 하이얼,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함께 Allseen Alliance를 설립하여 오픈소스 코드 프레임워크를 통해 기기의 연결과 상호작용을 촉진하려 하고 있다. 이에 호응하여 언론은 사물인터넷 OS플랫폼 표준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ICT 생태계 주도의 핵이 될 것이라며 OS플랫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화 통화, 카메라 기능, 문자메시지 전송 등의 기본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플랫폼 위에 다양한 어플리케이션들을 설치하여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던 스마트폰 단말기들은 플랫폼의 구현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반면, 사물인터넷 단말기의 경우 원격의료기기, 무인자동차 등 특화된 기능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플랫폼 구현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소비자들이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여 사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사물인터넷의 플랫폼은 스마트폰에서와는 달리 기술적인 진입 장벽도 높지 않으며 어플리케이션에서 발생하는 네트워크 효과 역시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스마트폰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해볼 수 있다.
사물인터넷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할 것인가를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클라이언트(Client) 중심의 CPND에서 관점을 확장하여 클라이언트-서버(Server)의 관계를 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에서는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거나 클라우드와의 연동을 위해, 또는 게임을 즐기기 위해 서버와 네트워크를 통해 통신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의 기능의 중심은 클라이언트 영역(스마트폰+최종사용자)에 있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소비자는 UI를 통해 단말기를 조작하고, 발생한 데이터를 단말기 안에 저장하며, 스스로 단말기 안의 데이터나 각종 기능들을 분석하였다.
그러나 사물인터넷의 경우 사물(Things)들 가운데 웨어러블(Wearable)의 경우처럼 사람이 조작해야하는 사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람과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정보를 센싱하고 정보를 서버로 전송하는 사물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사물인터넷의 경우 클라이언트 영역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이며, 센싱된 정보를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저장된 정보를 빅데이터 기술로 분석하여 분석한 결과를 통해 클라이언트의 동작을 지시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서버 영역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현상은 사물인터넷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더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물인터넷 1.0의 시대에 하드웨어와 네트워크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나면, 사물인터넷 2.0의 시대에는 클라우드에 서로 개별적으로 존재하였던 사물인터넷 데이터들이 융합할 것이며,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데이터를 융합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새로운 사물인터넷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다. 이 시기에는 서버 영역에서 데이터와 데이터를 묶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데이터 플랫폼이 등장할 것이며, 양질의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데이터 플랫폼의 가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즉, 데이터 플랫폼은 스마트폰시대에 클라이언트 영역의 OS플랫폼이 글로벌 시장을 지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효과를 기반으로 미래 사물인터넷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