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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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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발전기금의 딜레마와 해법

  • 작성자곽동균  연구위원
  • 소속방송미디어연구실
  • 등록일 2019.01.29

먼저 질문하나.

우리 방송은, 좀 넓게는 우리 영상미디어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성을 갖는가? 만장일치까지는 아니어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좋은 영상미디어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공급자와 시청자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그 주변이 모두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게 양의 외부성에 대한 교과서적 정의에 부합한다고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이유다.

양의 외부성이 존재하는 재화 또는 서비스는 시장 거래를 통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최적 수준의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게 외부성이 존재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거래를 시장에 의존할 때 생기는, 사회적 후생 손실을 낳는 시장실패의 일종이라고 경제학은 가르친다. 거래에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편익을 누리는 이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사회화해서 분담하는 시스템을 만들 때, 양의 외부성이 존재하는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배분의 효율성이 달성된다는 해법도 제시한다.

방송 또는 영상 분야에 그대로 대입하면, 좋은 영상콘텐츠를 직접 소비하는 계층이 지불하는 금액만 갖고서는 사회적으로 최적 수준만큼의 양질의 영상콘텐츠가 공급되지 않으므로, 이 비용의 사회화를 통해 사회가 좀 더 부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제3자가 보기에 효용 여부가 불확실해 보이는 이런저런 제작지원 제도가 사실은 다 이런 경제학적 논거에 기초해서 설계된 것들이다.

우리 주변에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여러 기금들이 사실 이런 사회적 비용의 지불을 위해 준비된 것들이다. 블랙리스트건 덕분(?)에 일반인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문예진흥기금이 설치되고, 운영된 논거도 사실 ‘문화’라는 ‘양의 외부성을 낳는 재화 또는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비용 보조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극장에 갈 때마다 입장료의 일부에 더해서 내게 되는 영화발전기금이나, 스포츠 관람할 때마다 같이 내야 하는 국민체육진흥기금도 영화, 스포츠 자체가 풍성해질수록 영화 제작자나 관람자, 스포츠 선수와 관객 이외의 제3자들도 덩달아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진다는 우리의 믿음이 반영된 결과물인 셈이다. 그런 것들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도록 비용의 일부를 사회적으로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 기금들은, 그래서 지금도 알게 모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조성되고 사용된다.

방송 분야의 대표적 기금인 방송통신발전기금도 이런 맥락에서 조성되고, 사용되어 왔다. 더 좋은 방송, 더 좋은 영상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조성되었으니, 우리 방송 분야에는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재원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합리적으로 조성되고, 필요한 목적에 맞게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기금 조성 본연의 취지를 살리는 길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기금은 누군가 기여해서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누가 얼마만큼 기여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어디에 얼마만큼 사용할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하고, 그래서 늘 민감한 문제이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간 주로 독점 지대의 공적 환수라는 기여 방식이 방송 분야에서는 일반적이었는데, 독과점을 보장해주던 진입규제가 완화될수록 이런 방식의 유효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 소중한 기금이 사용되어야 할 방송서비스가 갖는 양의 외부성이 지금도 여전한 이상,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조성과 활용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고민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이 기금 걷는 방식 때문에 기술과 시장이 이미 개방되어 버린 영역을 정부규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건,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으니 더 난감하다.

정부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이제 더는 유효하지 않은 논리에 근거해서 기금을 조성할 수 없으니, 새로운 합리적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독점 지대의 공적 환수라는 논거에 의존하는 방식 대신, 수혜자 부담의 원칙을 내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수혜자 부담 과정에서 수혜를 많이 보면 볼수록 더 많이 분담하는 비례의 원칙도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방송콘텐츠를 통해 수혜를 받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이 비례의 원칙에 부합하는 기여금의 분담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이 소중한 기금의 안정적 조성 환경이 유지될 수 있다. 분담금의 산정 과정이 더 투명하고 합리적 방식으로 변할 것을 요구받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이 소중한 기금의 지출도 불요불급한 것은 없는지, 적재적소에 사용되고 있는지 더 많은 관심과 책임성 있는 참여, 그리고 사회적 모니터링 비용을 낮출 수 있도록 더 많은 정보공개가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 부서대외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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