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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깜짝! 놀랐다. 기안을 쓰려고 이번 주 금요일의 날짜를 찾다가 , 그 ‘이번 주 금요일' 을 12월 달력에서 찾아내고는 정말 깜짝 놀라버렸다. 아아. 2004년 … 너마저도 매정하게 뒤돌아 보아주지 않는구나.
여전히 기안은 몇 번씩 반송된 후에야 결재가 나고 , 보고서에 써넣을 폼나는 단어 하나 떠올리기 힘든 상태로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 1년이 채워지고 있다.
올 초 입사 당시, 2004년에 대한 청사진은 참으로 야무졌더랬다. 17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처음 사회에 던져지는 스물다섯 살의 머릿속은 온통 ‘커리어 우먼' 의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
검은 정장치마에 스트라이프 셔츠의 깃을 세우고 신문을 읽으면서 새벽 출근 . (이왕이면 영자 신문이 좋겠고, 아무리 이른 새벽이더라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이 없다.) 점심 식사 후 근처 스타벅스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읽는 것 또한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의 로망.
그러나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는 버스를 갈아타고 나가야 한다는 환경적인 지각 이외에도 , 지각해서 뛰는 데에 정장구두가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깨닫는 데에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한두 번 입고 드라이 클리닝을 맡기면 4천원(위 아래 도합 8천원!!!)이나 받는다는 경제적인 지각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어서 난 2003년과 다를 바 없이 여전히 청바지 차림으로 출근한다.
여느 해보다 야심차게 시작된 나의 2004년은 한계시간체감의 법칙을 충실히 지키며 정신 없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빼곡하게 채워 넣었던 계획은 대부분 내년으로 이월되었지만 10여 년의 연례행사와 같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올 해에 대한 나의 감회는 참으로 새삼스럽다.
넌 열심히 살았니? 라면 말을 좀 얼버무리겠지만 최소한 방만하진 않았다고 자위하고. 넌 즐겁게 살았니? 라고 묻는다면 자신감을 실어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철딱서니라고는 찾을래야 없는 나를 그저 내다버리기 보다는 이해하고 주워담으려 애써주시는 분들을 만난 걸 보니 평소에 알게 모르게 착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박사님과 선배님의 생각 뒤를 밟아가며 그 생각을 내 것으로 훔치는 재미도 쏠쏠하고. 퇴근 시간 후 연구실을 독차지하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고상하지 못한 취미생활도. (전기세를 소급적용 하시겠다는 실장님의 말씀은 농담이실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회사가 재미있으면 돈을 내고 다니지 , 돈을 받고 다니겠니?” 라는 어느 선배의 말에 의하면 난 돈을 내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데, 꼬박꼬박 잊지 않고 월급을 챙겨주시니 세상은 참 살만한 것 같다고 1년 만에 속단하고 있다.
책상 머리맡에 자석으로 붙여놓은 계약기간 만료 통지서를 달력과 함께 바라보면서 다시금 새로운 한 해를 꿈꾸느라 이 바쁜 시간을 허비하는 중이다 . (밤새워 보고서를 작성하시며 나의 부분을 기다리고 계실 장박사님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화를 내실까?) S-shape 커브를 그리면서 통신시장의 미래를 예언(?)하고는 있지만, 나 자신의 미래는 항상 예측불허다.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해 불안함 보다는 설레임이 앞서는걸 보니 아직은 젊은게다. 1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나는 어떤 형태의 그릇이 되어 무엇을 내 안에 담고 있을까?
스스로도 미덥지 못한 나 이지만 , 이런 나에게 기대를 걸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방만한 성격의 나는 다시금 그 기대에 기쁘게 떠밀리고 있다. 고래는 칭찬에 춤추고, 이영진은 소중한 분들의 기대감에 정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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