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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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고도를 기다리며...

  • 작성자유여종  연구원
  • 소속공정경쟁연구실
  • 등록일 2005.04.26


2년 전이었던가, 2003년 5월 '고도를 기다리며'는 예상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막막한 어둠이었다. 이제 막 30대의 문턱에 들어서던 나의 눈은 'GODOT'의 철학적 의미보다는 옆자리에 앉은 곱슬머리 청년의 반듯한 이마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호한 대사와 무의미한 행위 속에서 난생 처음 '부조리'에 대해 생각하고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짧은 단편은 아직 내 기억의 한 편을 잡고 있다. 이 작품은 반연극적인 요소를 지닌, 소위 '부조리극'이라 일컬어진다. 과거의 연극에 반기를 들며 고대 희랍의 순수 연극으로의 회귀를 바라는 경향을 보여주는 이 극이 과연 오늘의 내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지 아직 의문으로 남아있지만 무슨 희귀한 병에 걸린 마냥 난 아직도 뭔가 허전하고 맥이 빠지는 주말 오후가 되면 이제는 남편의 이름으로 내 옆에 서있는 그 이마가 반듯한 곱슬머리 청년과 옛 기억속의'GODOT'를 찾는다.

며칠 전, 2년 만에 다시 찾은 홍대 앞 '산울림'극장엔 아직 그 'GODOT'가 있었다. 결혼 후 뜸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되면 조금은 비싸지만 연극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연극이 항상 우리 인생처럼 현재시점에서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은 내가 공연을 지켜보는 그 처음 시각, 어둡고 텅 빈 공간에서 시작되면서 내가 미처 알지 못하던 삶의 또 다른 영역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마침 산울림극장은 개관 20주년 기념공연으로 'GODOT'를 상연하고 있었다. 지난 20년전 이 극장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도 초연작이 'GODOT'였다고 하니 가히 감동적인 회귀(回歸)인 셈이다.

막이 오르면, 마른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무대, 허름한 자켓를 걸친 에스트라공이 길가에 앉아 열심히 구두를 벗으려 애쓴다. 거기에 낡디낡은 연미복을 입고 지저분한 검정 넥타이를 맨 블라디미르가 나타나 기묘한 대화를 시작한다. 시점,공간,의미, 이 모든 것이 불분명한 그들의 대화에서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내 삶의 은유를 발견하게 된다. 두 사람은 'GODOT'를 기다리기 위하여 여기에 온 것이다. 내가 굳이 'GODOT'에 대해 아무 언급을 하지 않는 이유는 누구도 그 의미를 모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1960년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공연됐을 때 모든 사람들에게 'GODOT'는 러시아로부터의 오지 않을 것 같은 '자유'를 의미했을 것이고, 프랑스 통치아래 알제리에서 공연 되었을 때 땅을 갖지 못한 농부들에겐 토지개혁에 대한 약속으로 여겼을 것이며, 미국의 San Quentin 형무소에서 공연되었을 때 'GODOT'는 누구나 다 기다리던 석방을 의미한다고 감옥 안 죄수들에 의해 발간되는 신문에는 써있었다고 한다.

2005년 봄, 대한민국 서울,,, 내게 'GODOT'는 무엇인지 그 답은 결국 나만이 알고 있는 까닭에 난 'GODOT'에 대한 아무런 해석도 제시하지 못한다. 어쩌면 스스로의 체험에서 얻은 사실적인 요소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를 점차적으로 줄여나감으로써 보편적인 호소력을 일으키고, 극도로 단순한 구성을 통해 만인에게 다가가는 작품을 창조해 낸 것은 작가인 S.베케트 자신만의 능력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다시 극으로 돌아가자.
블라디미르는 어제도 여기에 왔었다고 하고, 에스트라공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블라디미르가 오늘이 토요일이라고 하자 에스트라공은 아니 금요일이다, 어쩌면 목요일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 지금이 며칠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GODOT'를 기다리는지, 'GODOT'가 누군지조차 그들은 모른다. 다만 그가 오면 그들은 구원받는다는 것, 밤이 오면 'GODOT'를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며, 내일 또 기다리면 된다는 사실만이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이다. 절망과 불안과 기대를 참아가며,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그들은 광대 같은 대화를 나누고, 시시한 장난에 빠져 버린다. 그러나 곧, 다시 'GODOT'를 기다리며 알지 못할 운명같은 어둠에 사로잡힌다. 그 가운데, 목에 밧줄을 매고, 두 손에 무거운 짐을 든 노예 럭키 -그 이름이 주는 기막힌 부조리를 생각해보라- 와 밧줄로 그를 조종하는 거만한 부자 포조가 등장하고, 그들이 곧 그 기묘한 대화에 끼어든다. 제2막에서 오직 하루라는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럭키는 벙어리가 되고, 포조는 장님이 되어 다시금 우리를 혼돈스럽게 한다. “시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언젠가 그 시각에 장님이 되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포조나, 장장 3분에 걸쳐 쉬지 않고 생각하는 바를 말해대는 배우의 기억력에 기립박수하다가 럭키의 부조리한 언행에 우린 다시 좌절한다. 2막이 시작되면 유일하게 바뀌어있는 무대 배경은 황량한 나무에 잎사귀 하나 돋아났다는 것, 어쩌면 배우나, 관객이나 모두들 긴 꿈을 꾼듯한 기이한 환경속에서 우리의 삶은 처절하게 왜곡되고 거절된다.

거기에 제1막에 나타났던 소년이 다시금 등장하여 오늘은 'GODOT'씨가 오지 못한다고 되풀이하여 말한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정면만을 응시하며 짧은 대사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는 이 기이한 소년의 캐릭터는 이 시대의 미디어가 그러하듯 단편적이고 부정확한 정보의 채널 같은 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ODOT'는 언젠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어쨌든 무사히 하루가 지난 것에 안도와 숨을 쉬며 어제처럼 나무에 목을 매려 하나, 허리띠가 끊어져 그저 하릴없이 마네킹처럼 멈추어 버리고 조명은 어두워진다.

아예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애초에 생각한 바만큼 좋지는 않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을 드러낸 이 극을 보고 그나마 손수건만한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아직 우리가 기다릴만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어설픈 자위일 것이다.

간만에 남편과 센치해진 마음에 하릴없이 홍대앞을 거닐다 생맥주 한잔 하고 집에 들어간다. 'GODOT' 는 오지 않고 그렇게 또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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