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더운 것은 당연지사지만 장마 끝에 찾아온 더위는 우리를 지치게 한다. 한 낮에 수은주는 30도 쯤은 우습게 넘나드는데다가 고온다습한 이 날씨는 한밤이 되어도 가시질 않아 열대야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더위를 타는 체질이라 여름이 되면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주책없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땀에 한바탕 샤워를 하고나면 그야말로 사우나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그럴 땐 웃통을 벗어 제치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면 어머니께서 찬물을 한바가지 퍼부어 주시곤 했는데, 그때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얼어버릴 듯한 오싹함을 무엇에 비기랴...
사실 지금이야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종일 가동되는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지내고 있으니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덥다, 더워”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정말 에어컨은 고사하고 그 흔한 선풍기조차 없던 그 옛날의 선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이다. 어쩌면 에어컨보다 더 그럴싸한 뭔가가 있지 않았을까?
삼복더위를 이기는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죽부인과 대발, 등토시 등의 도구이다. 죽부인은 살이 겹치는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 땀이 차는 것을 막기 위해 대나무로 짠 기다란 통을 말하는데 이것을 부인처럼(?) 안고 자면 바람이 솔솔 통해서 숙면을 이룰 수가 있었다. 대발이나 등토시는 팔에 차거나 조끼처럼 몸에 걸치는 대나무 옷인데 역시 그 사이로 바람이 통해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탁족(濯足)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피서법의 하나였다. 산수(山水)가 좋은 곳을 찾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노닐다 보면 발바닥도 자극을 받아 건강에도 좋고 더위도 이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 아닌가?
울창한 숲 속의 흐르는 계곡에서 시회(詩會)를 열어 더위를 피하기도 하였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전국을 떠돌면서 끼니나마 거르지 않게 된 것이나 매천 황현이 문사(文仕)로 대접받게 된 것도 바로 이 시회를 통해서였다.
또 글 좀 읽는다는 선비들은 의관까지 정제(整齊)하여 사랑에 앉아 독서삼매(讀書三昧)에 빠지는 것으로 무더위를 이겨내곤 하였다. 본래 삼매(三昧)란 불교에 있어서의 수행법으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감각적 자극이나 그 자극에 대한 일상적 반응을 초월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매에 빠지면 옆에서 벼락이 쳐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몸의 열을 빼는 데만 급급한 게 아니라 정신의 수양을 통해 더위를 잊으려 한 선조들의 지혜로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여유롭게 모여 시회(詩會)를 열거나 의관을 정제(整齊)하고 사랑에 앉아 글을 읽으며 선비노릇 하기란 어딘지 어색하고 불편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선인들의 이러한 지혜는 요즘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틀어대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불쾌지수를 탓하는 우리들에게 “인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끔 해준다.
지구 온난화 현상과 엘니뇨현상으로 인해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 예견됐던 2005년 여름, 그 중에도 가장 덥다는 삼복(三伏)이다.
사상 최대의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해수욕장의 사람들이나 에어컨이 빵빵한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즐기는 사람들 모두 어떻게든 이 더위와 맞서보겠다는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낱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 더위를 덜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했다면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더위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인식하기보단 함께 즐기는 대상으로 인식했던 선조들의 내공을 따라잡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제 아무리 기승을 부리는 더위라 할지라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