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결혼정보 회사에서 1천억 갑부가 데릴사위를 공개모집한다는 기사를 냈다. 갑부의 데릴사위가 되는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사위를 맞아들인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얻는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기사가 났던 첫날에는 슬슬 눈치 보던 이 땅의 데릴사위 후보자들이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현재는 250여명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원자들 중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의사와 변호사, 대기업 직원들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그들은 그야말로 작금의 우리사회에서 부러워하는 사윗감 후보들인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갑부의 사위가 될 조건이 충분하다고 생각되었기에 공개모집에 지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는 그럴만한 이유와 필요성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왠지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아들이 없는 갑부로서는 아들 같은 사위를 얻어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좀 더 불리거나 온전히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갑부의 처지에 있더라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돈이 있는데 필요한 무엇을 얻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결혼의 본질에 대해 살짝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과연 그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일만한 일인가 싶을 것이다.
얼굴조차 모르고 결혼했던 우리의 부모들도 양가의 가풍과 두 사람의 면면을 맞추어 보고나서 결혼을 결정했지, 한쪽의 일방적인 조건에 맞추지는 않았다. 그것이 법도요, 예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 시대에 유물론적 사고를 들어 결혼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자신의 꿈과 야망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개척하려는 젊은 남자들에게는 적잖은 허탈감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갑부의 데릴사위 될 확률이 지나가다 무심코 산 로또복권정도라면 백수들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 아닌가.
아마 그들에게도 답답함은 있을 것이다. 누군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벤츠타고 쌩쌩 달리고 싶지, 36개월 할부로 자동차 사고 싶겠는가. 결혼자금 때문에 고민하고 대출금리에 상처받고, 교육비 때문에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사회에서 누군들 크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 유혹이 설령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준다고 해도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보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파전에 소주 한 잔 마시고, 보너스를 아껴 연인의 반지를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괜찮아, 라는 말속에는 방 한 칸짜리 지하 월세방과 호화로운 팬트하우스의 꿈과 사랑이 있다. 그들의 꿈에는 갑부가 부럽지 않은 달콤한 행복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