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57.1%는 휴대전화로 인해 삶이 더 행복해졌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각자에게 하나의 전화회선이 할당되어 있는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추상적인 말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전세계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세상에는 이미 오래 전에 휴대전화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곳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도 있다.
그렇다면 각 지역별로 별개의 기준을 적용하는 편이 나을까. 많은 여성들은 그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세계를 하나로 묶는 시각이 갖는 설득력과 응집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바일 기술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켰을까. 특히 여성들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변화의 징후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자체가 이 변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영국 티스사이드(Teesside) 대학 사회정책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속성이 모바일 기술로 인한 여성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에서 응답자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자신만의 사적(私的)인 영역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시도들이 공적 영역과 미묘한 마찰을 일으키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감청(監聽)에 대한 불안 때문에 휴대전화가 개인의 사생활을 충분히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남성들의 주장도 흥미롭지만, 보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젊은 여성들이 부모나 남자 형제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친구들과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를 곧바로 지우는 경우가 많다는 대목이다.
남성들이 정부의 감청처럼 집 밖에서부터 침투해 들어오는 감시의 시선에 불안을 느끼는 동안, 여성들은 집안이라는 공간 자체로부터 자신들을 감시하는 공공의 시선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벌어지는 이런 소소한 실랑이는 얼마나 의미 있는 변화일까. 그 싸움에서 한 번 더 승리하는 것이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일일까. 국제기구들은 그것이야말로 여성이 IT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최종 목표라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한 차원에서 ‘여성과 IT’의 관계에 관한 논의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과 IT에 관련된 여러 국제기구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주요 논점 중 하나는, 어떤 개발도상국 가정에 컴퓨터를 보급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여성의 인터넷 접근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만큼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가정과 사회의 온갖 편견, 장애, 그리고 감시를 극복하는 일이다. 국제기구들은 여성 스스로에게 결정 권한이 주어지는 순간 비로소 이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는 휴대전화가 가정 내에서 만들어낸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58.5%가 휴대전화 사용으로 인해 전화통화를 하는 장소가 거실에서 방으로 옮겨갔다고 응답했다. 거실이 집안의 광장이고 가족들의 감시의 시선이 느껴지는 공간이라면, 여성들이 전화통화를 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저항의 단면이다.
그 동안 각 가정에서 어떤 미묘한 실랑이가 오갔는지를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용건만 간단히 하라는 핀잔이나, 전화요금 총액을 통해 가족 구성원의 통화 습관이 노출되는 문제로부터 벗어나 나에게 할당된 하나의 회선, 그것을 장악함으로써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줄 수도 있었던 자유를 대신 얻어내려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이동통신업체인 그라민폰(Grameen Phone)은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그동안 이동통신 시장에서 외면 받던 농어촌 지역의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그라민폰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라민 은행의 사회사업의 일환이다. 이 사례에서 여성 고객은 여성 사업자를 선호하는 현상을 보였고, 여성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으며, 결국 이 모든 과정이 경제적 이윤으로까지 이어졌다. 여성들이 만들어 가는 네트워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서 결집하며 경제적 자립을 꿈꾸는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IT가 세계 여성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변화의 모습이다.
그런데 모바일이 가져오는 변화는 모두 긍정적일까. 한국 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밥을 챙겨주거나 안전을 확인하는 일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일까지 휴대전화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녀들의 휴대전화를 열어보는 것이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과 같은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는 등 자녀들의 세계로부터 소외되는 현상도 함께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아직은 휴대전화의 ‘밀실’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나이가 어린 여성일수록 휴대전화를 이용한 감정 표현에 긍정적인 반면, 전업주부들은 오히려 다른 식구들로부터 해방된 유선전화 회선을 장악해 가는 식의 새로운 변화 양상을 보이고 있어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 어렵게 만든다. 다만 그 변화가 기존의 유선 통신이 갖고 있던 공적인 성격을 넘어 새로운 사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는 징후는 찾을 수 있다.
조사 결과 여성의 경우 휴대전화를 통한 전화통화의 40%가 배우자와 자녀에 집중되어 있으며 나머지 중 28.8%가 동성 친구와의 전화통화로 나타났다. 반면 부모님, 친지, 회사동료 등 유선전화 시대의 주요 통화 대상이었던 층은 새 네트워크에서 벗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늘 가까이에서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누던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선전화 시대의 사고방식으로 보자면 그저 낭비밖에 안 보일 변화이지만, 어쩌면 이 변화야말로 여성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 조선일보 9월 14일자(금, D5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