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조합원 MT를 마치고 연구원으로 돌아왔다. 지난밤의 과다한 음주와 수면부족으로 인하여 몸 상태가 말이 아니지만, 부탁받은 원고의 마감이 코앞이라 어서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생각에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아무래도 지금이 제일 좋겠다. 내일이 되면 이 감흥은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연구원에 들어온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위촉연구원으로 지내던 시절과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다른 실 식구들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점이다. 내가 속한 조직의 구성원들에 대하여 알기에 MT만큼 좋은 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
연구원의 각종 체육행사에서 그러하듯이 이번 MT를 제안한 것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도 우리 공정실이었다. 사실 그러한 배경에는 전원참석을 명하는 선배님들의 압력과 타실과는 달리 남자연구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조성된 상명하복의 다소 조직적인(?) 분위기가 전혀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태풍이 북상한다고 하여 걱정이 많았지만, 교통이 조금 막혔을 뿐 전원 무사히 목적지인 대부도에 도착했다. 삼겹살에서 조개구이로 이어진 왁자지껄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적당히 흥이 오른 우리는 곧 레크레이션에 돌입했다. 통방실 신선배님 사회로 진행된 레크레이션 시간에는 O/X 퀴즈(비행기 휘발유보다 자동차 기름 값이 더 비싸다는 사실은 아직도 수긍할 수 없지만, 어쨌든 협력실 박연구원 윈)와 조별대항 노래 릴레이게임(문/홍 선배의 노래방 기계도 울고 갈 재치 넘치는 선곡에 힘입어 3조 우승), 그리고 KISDI MT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림보게임(협력실 박연구원, KISDI 최고의 허리로 등극^^)이 펼쳐졌다.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밤을 잊은 사람들끼리 모여 본격적인 술자리가 벌어지고, 여기서 비로소 많은 사람들과 진솔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최고참으로 MT에 참가해 주신 이선배님에 대한 소개를 필두로 릴레이 자기소개가 이어졌는데, 연구원 입사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평소 어렵게만 보이던 선배님들의 너무나도 순박하고 인간적인 모습에 서로에 대한 벽을 허물게 되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미혼 연구원들을 위한 탐색시간으로 보다 유익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쪼록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옆에서 자는 누군가의 요란한 코골이로 자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짧은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향했다. 사실 태풍이 온다고 해서 서바이벌은 못하려니 살짝궁 기대하고 있었는데, 웬걸 거짓말처럼 개인 하늘을 원망하며 잔뜩 얼어서 교관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오호 자동총이란 말이지, 게다가 총알도 생각만큼 살벌하지 않고(노란색 알사탕 같더라) 보호복도 든든한 것이 좀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팀 소대장으로 뽑힌 오선배가 영 불안했지만, 대신 우리에겐 한기사님이 계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첫 번째 게임에선 포복해서 기어가는 선배 뒤를 꼿꼿한 자세로 쫓아가다가 한발도 못 쏘고 전사했고, 두 번째 게임에선 앞서 너무 일찍 죽은 것이 억울하여 무턱대고 쏘다가 총알이 바닥나서 또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어디서나 힘 조절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다. 세 번째 게임에서야 비로소 감을 잡고 그래도 최장시간 버틴 거 같다. 비록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고 계속 엄폐물 뒤에 숨어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매트릭스의 트리니티를 연상시키는(혹자는 탈레반 같다고도 하였으나) 여전사들의 활약으로 우리 팀이 승리, 나도 소중한 상품권 한 장을 챙길 수 있었다. 협력실 홍선배와 박연구원님께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그렇게 준비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족들과 함께 따로 출발하는 선배님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데 왠지 마음이 살짝 저릿한 것이 기분이 묘했다. 이것이 동지애라고 하면 좀 오버일까... 분명한 건 이번 MT를 통해 서로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월요일이 되면 또 다시 치열한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우리에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있으니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