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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과 미디어 진도

  • 작성자박병선  연구원
  • 소속방송미디어연구실
  • 등록일 2012.11.20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다매체 시대의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셰리 터클은 고등학생들과 ‘언제 문자 메시지나 메신저, SNS, 전화를 이용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들은 적재적소에 적절한 미디어를 사용하는 규칙들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그들 중 한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전화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1) 이러한 문제는 비단 젊은 층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업무 상황에서도 이메일 위주로 소통하다가 전화를 해 달라고 청하면, 상황의 시급성이나 중요성이 한 단계 올라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관계 맺음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러한 미디어의 ‘레벨’을 정하는 문제가 더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다음은 이러한 조정의 어려움을 방증하는 사례다.

월요일 아침, 결혼하고 싶은 남자 A군이 한숨을 푹 내쉬며 사무실 문을 연다. 이번 소개팅 상대와는 서로 마음에 들어 했다며 기대를 가지고 있던 그였는데, 이틀째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엊그제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는데 왜인지 모르겠다며.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그와 그녀는 이제 한 번 만난 사이였을 뿐이다. 그녀도 즐거워서 한 통화가 아니었다면 장시간의 통화는 부담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뿔싸, 마음이 너무 앞서나가셨네요.

휴대폰이 전화기가 아닌 지는 꽤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화기를 통해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문자 창에, ‘카톡’ 창에 ‘갖다 붙이는’ 작업을 더 자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인 커뮤니케이션 채널들도 일련의 계열을 형성하게 되었다. 눈과 손 계열의 문자와 메신저, 입과 귀 계열의 음성통화는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일대일 커뮤니케이션 통로이다. 이들 간에 친밀도의 레벨 또는 보다 잘 맞는 상황 궁합이 존재한다면, 연말을 혼자 보내고 싶지 않은 A군들은 어떤 미디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보다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까.

주변의 미혼 여성들을 상대로 검증한 비교적 실패 확률이 적은 전략으로, ‘문자>메신저>10분 내외의 통화>면대면 고백>장시간 통화’ 순으로 미디어를 ‘트는’ 것을 추천한다. 처음 만날 상대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한 후, 카카오톡에서 그녀(그)의 프로필 사진을 먼저 확인했더라도 정중하게 이름 석 자를 넣어 문자를 보내는 편이 좋다. 메신저나 쪽지는 상대방의 반응 유무에 대한 기대 없이 가볍게 보내는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이다. 첫 만남을 전후로 한 연락의 지속 단계에서는 서로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각종 스티커와 이모티콘을 통해 친근함을 표현할 수 있는 메신저가 적당하다. 메신저는 상대방에게 적당한 접속 시간과 조종 시간을 제공하며, 대화 상황에서 발생하는 공백을 메우는 부담 또한 없다. 만남 이후 고백 이전까지 상대방의 생활에 침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짧고 규칙적인 전화이다. 메신저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보낼 수 있지만, 통화는 주변 상황으로부터 분리되어 그 내용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장시간의 통화는 상대방의 자발적 시간 마련이 용이한 고백 이후에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법칙에는 예외가 따르며, 예외가 성공하면 용기의 산물이 된다. 적절한 ‘미디어 진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센스라면, 약지 않은 우직한 진심 또한 스마트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순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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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셰리 터클(2010), 외로워지는 사람들, p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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