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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유럽에서 느낀 한국의 ICT 경쟁력

  • 작성자황주연  연구원
  • 소속통신전파연구실
  • 등록일 2013.04.15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한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13개월 동안 내 손으로 키우던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출근하려니 여러 가지로 마음이 참 복잡했는데, 역시 직장맘인 친구를 통해 홈 모니터링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거실에 IP 카메라를 설치하고 스마트폰에 앱을 깔면 언제 어디서든 집을 모니터링 할 수 있다는 아주 솔깃한 이야기였다. ‘아, 역시 내가 한국에 돌아왔구나...’ 바로 깨달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나는 남편의 해외연수에 맞추어 독일에서 출산을 하였다. 처음 독일에 도착하여 말도 잘 안 통하는 상태에서 생애 첫 출산을 준비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중 첫 번째로 닥친 고난(?)은 바로 인터넷 개통이었다. 전임자를 통하여 독일의 고약한 인터넷 서비스에 대하여는 익히 들은 바 있었지만, 직접 경험하고 보니 정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독일에서는 보통 인터넷을 신청하면 개통까지 대략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이미 한 달 전에 인터넷 개통을 신청해 놓은 터였다. 그런데 약속한 날이 되어도 설치기사는 집에 오지 않았다. 외출도 못하고 하루 종일 꼼짝없이 집에서 기다리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 전화를 해 보니, 집에 아무도 없어서 그냥 돌아갔다는 것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짧은 언어실력 때문에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하고 다시 일주일 후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이런 일이 그 뒤에도 두 번이나 더 반복되었다는 사실이다. 한참 후에 알았지만 독일에선 이런 일이 그냥 일상다반사라고 한다. 결국 남편은 아기를 낳고 병원에 누워있는 나를 혼자 남겨두고 하루 종일 집에서 기사를 기다린 끝에야 겨우 인터넷 개통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전화 한 통이면 하루 만에 신청에서 개통까지 끝나는 한국의 시스템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아기도 태어나고 유럽까지 왔는데 슬슬 여행이라도 다니려면 차가 필요할 거 같아 중고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독일에서는 자동차 브랜드마다 공식대리점에서 신차와 중고차를 함께 판매한다. 사설업체를 통하면 조금 저렴하게 구입할 수는 있지만 다소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본사에서 운영하는 직영대리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인수할 차를 결정하고 담당 매니저로부터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있을 때였다. 한참 내비게이션 사용법을 설명하던 매니저가 문득 코리아에서 왔다니 전자기기 사용에 아주 능숙할 거 같다면서 “한국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지요?”라고 물었다. “있다마다요. 심지어 우리는 다 터치식이랍니다.” 남편의 대답을 들은 매니저는 놀라는 표정으로 독일 차는 아직 터치가 안 된다면서 역시 한국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쑥 치켜 올렸다. 자동차 대국이라는 독일에서 우리나라의 ICT 경쟁력이 이 정도구나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여행지는 영국 런던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영국에 갔었던 때에는 아직 런던에 런던아이(London Eye)가 생기기 전이었다. 런던아이는 영국이 밀레니엄을 기념하여 템즈 강변에 세운 세계에서 가장 큰 대관람차로, 지금은 빅벤과 함께 런던의 상징이 되었다. 마침내 런던아이를 타게 되었다는 기대에 너무나 설레었던 나는 망설임 없이 첫 번째 일정으로 런던아이를 선택하였다. 런던아이에 오르면 최고 135미터 높이에서 반경 40Km에 이르는 런던 시내의 모습을 다양한 방향에서 관람할 수 있다. 그런데 런던아이에서 내려다 본 빅벤의 조망보다 더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안에 설치된 우리나라 전자회사의 태블릿 PC였다. 런던아이에는 총 32개의 캡슐이 있는데, 25명 정도가 탑승할 수 있는 한 캡슐마다 빙 둘러가며 총 6대의 태블릿 PC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화면에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각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뷰가 그대로 캡처되어 있고, 화면을 터치하면 주요 명소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그토록 기대하던 런던아이에서 우리나라 제품을 만나니 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한국에 돌아와 회사에 복귀했더니 런던아이에서 보았던 그 태블릿PC를 업무용으로 지급받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런던에서 느꼈던 흥분이 떠올랐다.
       
국내 LTE 가입자 수가 2,0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약 3분의 1이 LTE 가입자인 셈이다. 나도 독일에 있을 때는 구입한 지 2년이 훨씬 넘은 3G폰을 쓰면서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한국에 들어오니 몸이 근질근질하여 바로 4G 최신 스마트폰으로 갈아탔다. 그러다 문득 서비스 속도도 그렇고 단말기 교체시기도 그렇고, 뭐든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의 문화가 어쩌면 지금 우리의 글로벌 ICT 경쟁력을 만든 근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냄비근성이라는 말로 종종 폄하되곤 하는 그 문화가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른 통신망을 인구대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는 나라로 등극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잘 모르지만, 발상의 전환, 이것이 창조경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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