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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그리고 부정부패

  • 작성자김문혁  위촉연구원
  • 소속감사심사국
  • 등록일 2014.02.03

“초강력 태풍 하이옌으로 국가재난사태에 이른 필리핀 타클로반의 모습이 충격을 자아낸다. 필리핀은 지난 8일 최대 순간풍속이 시속 235km에 달하는 슈퍼 태풍 하이옌의 강타로 약 1만 명이 사망·실종했으며, 도시의 95%가 진흙투성이의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해....”

여러분은 지난 해 11월 필리핀에 들이닥친 참혹한 상황을 기억할 것이다. 나 또한 필리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기에 소식을 접했을 당시 그들의 어리숙한 듯 순박한 표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몇 해 전 나는 필리핀에서 어린이 영어캠프를 기획하는 지인의 요청으로 두어 달간 필리핀에 머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덕분에 그동안 현지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이었지만 여러 방면의 관심사를 주제 삼아 대화를 나누다보니 때로는 그들의 소박함에 감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억에 그들에게는 항상 고단한 일상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묻어있었고 그래서인지 우리 대화의 대부분은 그들의 축적된 서사에 점철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을 무렵 ‘왜 이렇게 가난할까?’ 에 대한 경제적 의문과 ‘왜 이럴 수밖에 없었을까?’ 에 대한 역사적 회의 따위에 내 필리핀 친구들은 덤덤히 이렇게 답했다.

‘태풍’ 그리고 ‘부정부패’

필리핀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 국가 중에서 경제 발전이 빠르고, 경제 수준도 높은 나라에 속했다. 당시 한국은 ‘필리핀만큼만 살자’가 모토였으며, 서울 한복판의 장충 체육관도 필리핀의 기술력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차관(借款)문제로 필리핀을 방문하려 했다가 갖은 수모를 겪어낸 야설(野說)도 전해 내려오니 이만하면 필리핀의 호시절을 쉽게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최빈국으로 전락하여 한때의 위상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필리핀의 ‘가난’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많은 이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필리핀 정부의 부정부패를 꼽는다. 정부의 부정부패는 기업 활동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이는 국가경쟁력 향상에 치명타가 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해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홍콩)에서 실시한 아시아 국가별 부패지수 조사에서도 필리핀은 인도,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3위에 올랐고, 그 심각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필리핀의 소식통은 아직까지도 소란의 연속이다.

이러한 조직구성원들의 준법정신 부재는 비단 국가경쟁력뿐만 아니라 규칙과 질서가 무의미한 사회적 의식의 퇴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건 나만의 우려일까..? 수만의 목숨을 앗아간 태풍과 부정부패를 동일한 위험군으로 인식하고 앞장서서 나부터 규칙과 질서를 지켜야 할 때라 주장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직한 지하철 승객들’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내용인즉 이 사진은 캐나다의 한 지하철역에서 촬영된 것으로 지하철 자동 게이트가 고장 나면서 지하철 이용자들이 무임승차를 할 수 있었지만 상당수의 캐나다 시민들이 개찰구 위에 현금을 올려놓고 지하철을 탔더랬다. 해당 내용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선진국의 시민의식을 높이 평가했고, 박수쳤다. 그러면 여기서 모두에게 묻고 싶다. 현재 우리네 주머니 속 동전은 어느 쪽을 더 닮아있을까? 캐나다일까? 필리핀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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