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서울 시내 주요 구역의 케이블 사업자를 보유하고 있는 복수 케이블 사업자 A기업이 ‘A채널’과 ‘B채널’을 송출하고 있다고 하자 (A기업은 최대 2개 채널만 송출 가능). A기업은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후 A채널을 인수하게 되었는데, 이 때 A채널과 B채널의 번호를 바꾸었고 이후 A채널의 시청률은 급속히 증가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채널번호를 부여받기 위해 A채널보다 더 높은 송출수수료를 지급해오던 B채널은 기존의 좋은 번호를 지키지 못하게 되자 A기업이 계열화된 채널사용사업자 A채널에게 특혜를 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B채널의 주장은 정당할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자식을 더 예뻐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만은 기업에 따라서는 철저하게 콘텐츠의 작품성 및 완성도만 보고 편성을 하여 시청자들의 브랜드 충성도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이윤을 꾀하는 업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프로그램 유통 플랫폼이 계열화된 콘텐츠를 대상으로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이 부분에서 경제학적 실증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제학은 사실 분야와 관계없이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그들이 서로 상품을 교환하는 시장을 형성할 수만 있다면 어떤 산업에든 쉽게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미디어산업은 일반적인 제조업과 달리 “상품”과 “가격”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견 경제학적 이론을 적용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영화, 채널, 음악 등 콘텐츠 뿐 아니라 영화 관람, 방송프로그램 시청, 음악 감상과 같은 형태의 서비스 또한 “상품”이 되고 영화관람료, 방송수신료, 음악CD나 콘서트 입장료 등이 “가격”에 해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방송산업의 경우를 예로 들면 케이블, 위성방송, IPTV 사업자 등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플랫폼이 공급주체, 해당 서비스 가입자가 소비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 산업의 상품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영화, 방송프로그램, 음악과 같은 상품들은 질적으로 차별화되어있는 반면 서비스되는 가격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조조영화 관람 가격과 커플석에서의 관람 가격은 일반적인 영화관람료와 다르지만, 이러한 차이는 영화 관람 시간대나 영화관 좌석의 종류에 따라 다른 것이지 영화 자체의 상품적 특성으로 인한 차이는 아니다. 즉, 영화의 퀄리티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제작비 수준으로 비교하였을 때, 최근 개봉한 해외 블록버스터 “인터스텔라”와 국내영화 “카트”는 각각 1,800억원과 약 3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지만, 동시간대 동일한 영화관, 동일한 크기의 상영관에서 둘 다 8-9,000원의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 산업에서는 기업들이 가격경쟁보다는 퀄리티, 혹은 흥행성을 중심으로 경쟁하게 된다.
한편, 미디어 산업의 구조적 특성은 소수의 대규모 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은 대개 제작-유통 과정의 공급주체들이 수직계열화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보통 콘텐츠 제작 업체와 케이블 TV 등의 유통 플랫폼이 계열화되어 있으면, 이론적으로 중간 유통 단계에서 붙게 되는 부가적인 마진이 없어 소비자가 직면하는 시청요율이 과도하게 증가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방송 콘텐츠의 퀄리티를 시청률로 측정한다고 했을 때 이와 같은 흥행성은 사전적으로 예측하기가 어려워 수요의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때문에 계열화되어 있지 않은 유통 플랫폼의 경우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제작업체에 프리미엄을 요구할 수 있어 소비자의 시청료 상승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계열 제작 업체의 콘텐츠 중 시청률이 저조하여 적은 비율로 편성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계열 회사 전체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반복적으로 재송출 한다거나 유리한 시간대 및 채널에 편성하고자 하는 유인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이제 A기업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A기업이 A채널을 인수한 이후 B채널에 비해 차별적인 혜택을 제공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단순히 A채널이 유리한 채널 번호를 제공받은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청자 입장에서 A채널과 B채널은 이용 가격(시청료)이 동일하므로 두 채널의 퀄리티(혹은 흥행성)에 따라 동시간대 어떤 채널을 시청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며, 프로그램 편성 외에 채널 번호(일반적으로 낮은 번호가 먼저 나오므로 유리)나 채널의 연혁(일반적으로 익숙한 채널을 먼저 틀게 되는 경향) 등의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을 반영하여 A채널의 시청률이 증가한 것이 ① A채널의 방송 편성이 A기업과의 계열화 이후 효율적으로 변모하였는지, 아니면 ② A기업과의 계열화로 인한 각종 특혜로 인해 부당하게 얻어진 결과인지를 구분해내야 한다.
그런데 콘텐츠의 퀄리티는 매우 주관적으로 평가되며 특별히 정해진 측정방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자의적인 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가령 콘텐츠의 퀄리티를 반영하는 지표로 제작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제작비가 1% 증가하면 해당 채널의 광고매출 또는 가입자 규모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분석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 기사에 이따금씩 등장하듯 매우 낮은 수준의 제작비로 엄청난 흥행을 일구어내는 대박 콘텐츠들도 있다. 혹은,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 보다 예능 프로가 인기가 높은데 콘텐츠의 내용 및 구성으로 보았을 때 다큐멘터리의 퀄리티가 예능 프로가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보통 “퀄리티=흥행성“ 이라는 가정하에 시청률 변수를 퀄리티 변수로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도 주의해야할 점이 있는데, 가입자 규모가 반대로 시청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내생성의 문제”가 그것이다. 즉, 옆집, 이웃집, 아랫집이 모두 시청하는 채널이면 나도 한 번 시청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미 “내생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분석모형들이 개발되어 있으며1), 퀄리티를 측정할 객관적인 지표가 없을 경우 개체 하나하나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횡단면 자료의 경우 개별 Dummy 삽입, 패널 자료의 경우 고정효과를 삽입하는 등) 분석 가능하다. 이렇게 해야만 보이지 않는 현상들을 수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연구원으로써 방송 미디어산업에는 매력적인 연구 주제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처음 등장한 것이 1980년대로 비교적 최근이며, 실증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일반화된 수요예측 모형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아직 방송실에서도 경제학 이론은 부분적으로만 적용되고 있어 통계적인 분석 외에 양적 분석의 비중은 높지 않은 편인데, 앞으로 부단히 노력하여 많은 유용한 경제학 기법들을 바탕으로 더욱 폭넓은 연구를 수행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목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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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표적으로 IV(Instrument Variable) estimator, 2SLS(2 stage least squares) 등이 있으며 데이터의 성격과 가정 충족 여부에 따라 적절한 모형을 선택함.